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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번지점프 준비.”

우리는 이 일을 ‘번지점프’라고 부른다. 3만6000㎞ 상공의 정지위성 궤도에 놓인 우리의 작은 위성에서 케이블을 매단 드론이 강하하는 순간, 우리는 20세기에 로켓이 대기권을 가르며 날아오르는 순간을 지켜보던 NASA 직원들처럼 숨을 죽인다. 물론 그들은 올라갔고 우리는 내려간다는 차이는 있지만 긴장감은 다르지 않다. 케이블이 하강하면서 균형점이 변하기 때문에 반대 방향으로도 같은 속도로 추를 단 드론을 날린다. 철강의 100배 강도를 갖는다는 다층 탄소나노튜브로 만든 케이블이라지만, 3만6000㎞ 길이의 인장력을 확인하는 순간만은 입안이 바짝바짝 마른다. 예전에도 다른 업체에서 케이블을 설치하다 갑자기 일어난 돌풍으로 케이블이 중간에 뚝 끊어지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던가. 아래쪽에서 끊어졌기에 망정이지 위에서 끊어졌으면 지구 지름의 세 배나 되는 케이블이 성층권을 휘저으며 전자기 돌풍을 일으켜 전 지구적인 재앙이 발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케이블을 매단 드론이 지상기지에 안착했다는 신호가 오자 우리는 환호하며 축하를 나누었다. 아직 클라이머를 오가며 케이블을 보강하는 작업이 남아 있지만 큰 고비는 넘긴 셈이다.

“지구에 설치되는 열 번째 궤도 엘리베이터네요.”

“그래요. 그리고 우리 유로파에서 지구에 내린 첫 번째 엘리베이터고요.”

 

옛날에 인류가 달에 착륙하지 않았다는 음모론이 어찌나 유행했는지, 이에 대응하는 패러디 영상이 나온 적이 있다. NASA에서 달에 사람을 보낸 척 음모를 꾸미는 영상이다.

“그래도 떠벌려 놨으니 인류를 속이기는 해야 해요. 일단 로켓은 발사합시다.”

그러자 듣는 과학자가 심드렁하게 답한다.

“그 부분이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래도 달에 갔다 오는 비용은 아낄 수 있잖아요.”

“……식비 정도요?”

지금 인류는 거의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중력권을 탈출한다. 방법은 저 성서의 바벨탑 이래로 고대 사람들이 상상했던 방법 그대로다……. 걸어 올라가는 것이다. 하지만 바벨탑이 무너진 전설이 시사하듯이, 보통의 물질은 수만㎞의 길이와 무게를 버티지 못한다. 바꿔 말하면 그만한 인장력이 있는 물질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는 뜻.

2050년 첫 궤도 엘리베이터가 생겨난 이래, 달, 화성에 연이어 엘리베이터가 건설되었다. 중력권을 벗어나 일단 우주에 이르고 나면 연료는 들지 않는다. 우주 공간에 놓인 우주선은 깃털보다도 가벼운 셈이라, 태양풍이나 행성의 중력 정도로도 쉽사리 가속한다.

진출이 한 번 시작되자 그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달 전체가 헬륨 3 광산이 되었고, 화성에서는 화성 전체를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드는 테라포밍 계획이 시작되었다. 화성을 거점으로 인류는 메탄자원의 보고인 토성의 위성 타이탄과, 얼음 표면 아래에 천혜의 바다가 펼쳐져 있는 목성의 위성 유로파에도 진출했다. 그렇게 한 세대가 지나자 각 행성은 자연스레 지구의 행정권을 벗어난 자치구로 발전했다.

 

“그래서, 이 엘리베이터까지가 우리 유로파 영토인 거죠?”

창에 얼굴을 대고 지구를 내려다보던 한 직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번에 바뀐 우주 영토법에 의하면 그렇지요.”

내가 마찬가지로 창에 얼굴을 댄 채 답했다.

“이 케이블과 지상기지와 위성은 유로파 기술로 유로파 우주선에서 만들었으니까요. 이 엘리베이터 자체가 유로파의 국경인 셈이죠. 엘리베이터로 얻는 수익은 전부 유로파 것이고요. 지구는 자원의 보고예요.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법이 그렇게 바뀌면 지구에는 불리하지 않나요?”

“그야 그렇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투표에서 밀렸으니까요. 지금은 우주인 인구가 지구인보다 많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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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문제는 비용 대비 효과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아직 비쌀 뿐이다. 우주 진출에 가장 돈이 많이 드는 지점은 중력권을 탈출하는 순간이다. 여기에 천문학적인 돈이 들다 보니, 옛날 사람들이 ‘이쯤 되면 달 왕복선쯤은 오가고 화성식민지 몇 개쯤은 만들어 놨겠지’하고 상상한 시기를 살짝 넘겼는데도 우리는 아직 대충 지구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대기권 탈출에 돈 한 푼 들지 않는 때가 온다면……. 이론도 있고 방법도 있다. 필요한 것은 물질의 인장력 강도 정도다. 그리 머지않은 미래다. 그리고 그때에는 화석연료가 대중화되었을 때나 컴퓨터가 대중화되었을 때 이상으로 우리 삶의 패러다임 전체가 변할지도 모른다.

아서 클라크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2061>에서는 인류가 유로파에 진출하려 하자, 초지능의 외계인이 나타나 ‘유로파에는 이미 거주하는 생명이 있다며’ 접근을 금하는 내용이 나온다. 우리가 우주에 진출하게 되었을 때, 행성의 자연을 보존할 것인가,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바꿀 것인가, 행정구역과 정치단위는 어떻게 타협할 것인가, 과연 그때에도 주도권은 지구에 있을 것인가, 그때에는 상상할 수 있는 문제와 상상하지 못한 문제가 다 쏟아질 것이다. 얼마 전 세계 인공지능 전문가들이 모여 ‘아실로마 AI 원칙’이라 명명된 23개의 인공지능 원칙에 서명했다. 이 중 마지막 원칙은 ‘공동선’이다. ‘초지능은 하나의 나라와 조직이 아닌 모든 인류의 이익을 위해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주진출도 마찬가지로, 그 시대가 오기 전에 먼저 철학과 원칙의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김보영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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