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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하루아침에 인터넷 용량을 열 배로 늘려야 한다는 정부 지시가 내려왔던 날이었다.

“예전에는 컴퓨터로만 인터넷을 했는데, 이제는 전화로도 인터넷을 하고 TV로도 하고, 시계도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잖아요. 내년부터는 IoT(사물인터넷) 혁신법이 통과되어서 인터넷에 연결되는 기계가 훨씬 더 많아질 거예요. 지갑도 인터넷에 연결되고, 볼펜도 인터넷에 연결되고, 밥솥도, 냄비도, 신발도, 거울도, 빗도.”

“아니, 빗을 인터넷에 연결해서 뭘 하는 건데요?”

질문에 답을 듣기는 어려웠지만 그게 IoT이고 그게 미래라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인터넷 용량을 갑자기 그렇게 늘릴 수는 없다고 하니, 어떤 상무인가 전무인가가 무슨 교수의 말을 듣고 완전 자동화 인공지능 자율네트워킹 장비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자, 회사의 모든 사람들이 그 계획은 위험하고 문제가 많다고 열렬히 성토하기 시작했다.

나는 영란 선배에게 물었다.

“인공지능 자율네트워킹이 뭔데 다들 저렇게 싫어하는 거예요?”

“인터넷망을 만들고 관리하는 걸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인공지능으로 자동으로 하게 만든다는 거야. 그렇게 하면 인터넷망 효율이 높아진다는 거지. 급할 때 갑자기 증설하는 것도 간단해지고. 그러면 용량을 열 배로 늘리라는 정부에서 정해준 목표를 대충 맞출 수도 있을 거고.”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그런데 왜 반대해요?”

“완전 자동화 인공지능을 쓰면 인터넷망 관리하던 사람들이 할 일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거야. 그러면 회사에서 잘릴 수도 있을 거고. 그러니까 반대하는 거지.”

“정말 그런 거예요?”

영란 선배는 그에 대해서는 확실히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회사 분위기도 흉흉한데 부업을 하나 해 보는 게 어떻냐는 이야기를 꺼냈다.

“숯불구이할 때 쓰는 숯이랑 바비큐 장비 같은 거 있잖아? 그런 거 개량하는 사업 어때?”

“저 고기 잘 못 굽는 편인데요.”

“태어나면서부터 고기 잘 굽는 사람이 어딨어? 그리고 너 학교 다닐 때 화학 전공이었다면서. 산화, 불완전연소, 열역학 이런 거 배우지 않았어? 그런 게 다 숯불구이를 위한 학문이라니까.”

그 부업이 구체화될 때쯤해서, 전 직원들의 일치단결된 반대로 인공지능 완전 자율네트워킹 도입은 무산되었다. 대신 직원들의 몸을 내던진 끝없는 야근과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철야 작업 끝에 어찌어찌 정부에서 정해준 인터넷망 개선의 최소 기준은 그럭저럭 맞출 수 있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자, 우리 회사의 통신망은 인공지능 자율네트워킹을 도입한 해외 인터넷망의 질에 점점 심하게 뒤처지게 되었다. 중국이나 베트남에서는 신식 인터넷이 깔려서, 컴퓨터나 전화도 거기에 맞춰 점점 좋아지고 있었고 게임이나 학습 소프트웨어도 한층 더 빠른 인터넷에 맞춰 개발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은 사람이 관리하는 구식 인터넷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 컴퓨터나 전화를 만드는 전자 회사는 물론 소프트웨어 회사들까지 다른 나라에 뒤처지기 시작했다.

한국만 인터넷 질이 너무나 떨어진다는 소비자 전체의 항의까지 심해지자, 결국 정부에서는 완전 자동화 인공지능 자율네트워킹을 활용한 신식 인터넷을 들여와야 한다는 법을 만들어 버렸다. 우리 회사는 끝까지 거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자 한참 앞서 나간 외국 통신 회사들이 들어왔다. 경쟁을 이겨내기는 어려웠으니, 매출은 줄어들었고, 적자는 커져갔다.

기술이 뒤떨어진 회사는 결국 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국가 기간 통신망의 일부를 책임지고 있었던 회사니 살려야 한다는 여론을 부추겨서, 공적 자금을 지원받으면서 몇년 더 버티긴 했다. 하지만 선거철이 되자 “왜 다들 힘든 형편에 무능한 회사에서 일하는 무능한 사람들 월급을 세금으로 계속 메워 줘야 하느냐?”는 다수의 목소리를 당해낼 정치인은 없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 회사는 망했다. 그나마 우리 회사는 정부에 끈이 많은 곳이어서, 망하기 직전에 정부가 ‘정리해고자 특별 지원’ 규정을 승인해 줬다. 그래서 우리 회사 직원들은 퇴직금을 어느 정도 챙겨 나올 수 있었다. 이제 달리 할 일이 없는 그 사람들은 양념치킨집을 차리거나, 훈제치킨집을 차리거나, 전기구이치킨집을 차리거나, 팝콘치킨집, 파닭집, 닭강정집, 안동찜닭집 등등을 차리게 되었다.

한 발 먼저 진작에 회사를 때려치운 나와 영란 선배는 다행히 부업이 잘 풀렸다. 비슷한 사연으로 무직자가 된 사람들이 다들 뭔가를 굽는 자영업에 뛰어드는 판이었으므로, 숯불구이 기술을 개발하는 우리 사업은 한동안 꽤 짭짤했다.

“오랜만에 오늘 저녁에는 옛날 회사 사람들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느 저녁에 영란 선배가 연락을 받더니, 예전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바비큐 장치 여덟 대를 주문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치킨가게를 차린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 사람들은 일자리 다시 달라고 시위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왜 바비큐 장치가 필요한 거죠?”

“회사 빌딩 옥상에서 시위하는데, 주변 빌딩에서 시위하는 다른 팀들과 서로 연락을 해야 한단 말이야. 그런데 이 사람들은 항의한다고 인공지능 자율네트워킹 통신은 절대 안 쓰고 불매 운동을 하고 있다고. 그런데 어떻게 연락하겠어? 요즘 인터넷, 전화 전부 다 인공지능인데.”

영란 선배는 한숨을 쉬고 대답했다.

“그래서 바비큐 장치로 연기를 나오게 해서 빌딩 옥상에 봉화대를 만들어 연락하겠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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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한 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산업과 생활 모든 분야의 자동화는 한층 더 확대될 것이다. 만약 이러한 변화에 방해가 되는 조치가 너무 많아진다면, 활발한 국제 경쟁의 한가운데에 놓인 한국 산업계는 결국 해를 입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대로 이러한 변화에서 발생하는 구조조정을 대비하는 방안이 부족하다면 그것 또한 큰 사회 문제를 가져 올 것이다.

곽재식 화학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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