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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4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3월이 오자 우리 가족은 여느 때처럼 ‘피난’ 준비를 했다. 나는 학교에 임시 홈스쿨링 신청을 했고 부모님도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우리 집은 앞으로 2개월간 서울을 떠나 있을 것이다.

“괜찮아. 시골은 안전해.”

아빠는 차에 캐리어를 실으며 말씀하셨다. 서울 시내는 낮에도 헤드라이트를 켜야 할 만큼 뿌옇고 칙칙하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방독면과 고글을 쓰고 있다. 방독면을 쓴 한 무리의 유치원생들이 아장아장 횡단보도를 지나갔다. 눈앞을 지나는 유모차는 유리덮개로 덮여 있고 아기는 얼굴 전면을 덮는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5년 전, 미세먼지가 대량 발생하여 서울 시내에서만 스무 명이 호흡기질환으로 사망한 사건 이후, 정부는 공기오염을 홍수나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로 인정했다. 3월마다 서울은 비상이 걸린다. 공기청정기를 돌리며 집 안에서만 지내는 사람들도 있고, 공동으로 돈을 모아 방공호에서 지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처럼 서울과 시골을 오가며 사는 ‘공해난민’도 있다. 부모님은 내가 천식에 걸린 뒤 서울 집을 반으로 줄여 시골에 집을 마련했다. 공기오염 경보가 발령된 오늘, 도로 위에는 추석 귀가차량처럼 서울을 빠져나가는 차가 줄지어 있었다.

우리 두 번째 집은 강원도 ‘친환경 마을’에 있다. 이 읍에는 화석연료는 아무것도 못 들어간다. 처음에는 리 단위로 시행했지만 최근 읍 단위로 넓혔다. 우리 집은 진입로에서 도에서 대여해 주는 연료전지차로 바꿔 타서 들어갔다. 타고 온 전기차도 들어갈 수는 있지만, 우리 집 발전량으로는 도무지 전기차를 돌릴 만한 전기를 댈 수가 없다.

시골집에 가는 동안 대규모 산사태로 읍 일대가 정전이 되었다는 뉴스가 들렸다. 요새 인구가 몰리며 난개발을 한 것이 문제가 된 모양이었다.

“괜찮아. 우리 집은 안전해.”

아빠는 휘파람을 불며 말씀하셨다.

“우린 자체 발전을 하잖니. 전기가 끊겨도 문제없어.”

친환경 마을 입주조건은 쉬우면서도 어렵다. 첫째, 화석연료를 쓰지 않아야 하고, 둘째, 전기를 자체 생산해야 하는 것이다. 집에서 생산한 전기를 초과해서 전기를 쓰면 외부전기를 들여야 하는데, 그러면 서울의 열 배가 넘는 전기료를 내야 한다. 덕분에 우리는 영화 <마션>에서 화성에 간 마크 위트니처럼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한다.

일단 우리 집 전자제품은 스마트폰에서부터 노트북까지 모두 소형 태양광 충전기가 달린 것이다. 그나마도 전력을 줄이기 위해 최저사양의 제품만 쓴다. 한국은 비도 많이 오고 일사량이 그리 좋지 않은 편이라, 태양 충전이 잘 안될 때엔 신발 발뒤꿈치에 있는 밟는 전지를 활용한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도 계속 발을 움직여 충전한다. 수시로 집 안에 있는 운동기구 겸용 자전거 발전기를 돌리는 것은 물론이다.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와 퇴비도 마을 단위로 모아 재생 에너지로 재활용한다.

지붕과 차고에 올린 태양광 패널로 집 안 전력수급이 다 되면 좋겠지만, 우리 집은 말 그대로 ‘난민’이다. 집을 두 개나 운영할 수 있는 집이 뭐 그리 흔할까. 우리 시골집은 컨테이너를 개조한 간이집이고, 정부에서 지원을 받기는 했어도 여전히 초기 설치비용이 감당이 되지 않아서 패널을 반밖에 못 올렸다. 모자란 전기는 동네 지하에 공동으로 설치한 지열발전을 빌려 쓰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덕분에 우리는 TV도 시간을 정해서 보고 물도 아껴 쓴다.

“그래도 우리는 괜찮아.”

아빠가 마당에서 펌프를 퍼 올리며 말씀하셨다.

“형편이 안돼서 애를 지방 친척이나 친구 집에 맡기거나 토끼굴 같은 조잡한 시설에 보내는 경우도 그렇게 많대요. 요새 허가도 안 받은 애들 시설이 그렇게 많이 생긴대요.”

내 입장에서는 숨을 편하게 쉬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아서 딱히 불만은 없다. 서울에서 시골로 옮겨오는 것만으로도 생각하는 방식마저 변하는 느낌도 좋아한다.

어느 날 TV에서 긴급속보가 나왔다. 남쪽 낡은 원전에서 사고가 나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남쪽 일대는 대혼란이고 사람들이 대규모로 북쪽으로 피난 중이라고 했다.

아빠는 묵묵히 TV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뭐, 그……래도 우린 괜찮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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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에너지 중심으로 나라의 산업과 경제 구조를 혁명적으로 바꾼 나라가 있다. 스웨덴도 스위스도 아니라 저 체 게바라의 나라 쿠바다. 쿠바는 북한처럼 서방국가의 경제봉쇄를 당했고 소련이 붕괴되면서 그마나 있던 석유원조마저 끊겼지만, 북한과는 완전히 반대의 길을 걸었다. 석유와 석탄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대체 에너지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 미래에 빚을 지우지 않는 순환형 사회를 만든 것이다. 풍요롭다고는 할 수 없어도, 현재 유엔이 인정한 세계 유일의 ‘지속가능한 국가’가 되었다.

화석 에너지 중심의 경제구조를 전환하려면 그만한 수준의 계기가 필요하다는 증거일 수도 있겠지만, 현대의 기술만으로도 정책의 변화만 있다면 충분히 친환경 에너지 중심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겠다. 이 이야기에도 굳이 미래기술을 쓸 필요는 없었다.

한국 서울의 대기오염 수준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세먼지는 암과 호흡기 질환뿐만 아니라 우울증, 자살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몇%의 경제성장’의 구호가 더 이상 삶의 질을 높이지 않는 시대에 우리는 이미 와 있지 않은지.

김보영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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