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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음과 암흑.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크고 까끌까끌한 먼지들.

공기가 목에 뭉쳐 더 이상 몸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순간 현호는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누군가 굵은 밧줄로 두 다리를 꽉 묶기라도 한 듯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게 현호가 정신을 잃기 전까지 남아 있던 마지막 기억이었다.

현호는 강한 약품 냄새를 맡으며 눈을 떴다. 그는 자신의 몸보다 조금 큰 유리캡슐 속에 누워 있었다. 왼쪽에는 비교적 말끔한 정장을 입은 남성이, 오른쪽에는 하늘색 가운을 입은 여성이 앉아 있었다. 현호는 눈을 껌뻑거리고 얼굴을 찡그렸다 펴보면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돌이켜보았다. 낯선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그의 마음은 지나칠 정도로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정장을 입은 남자가 자상한 얼굴로 현호를 내려다보고 말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유현호씨, 정신이 드셨군요. 다행입니다. 여긴 병원입니다. 저는 의료복지부 직원입니다. 유현호씨는 어제 오수 쇼핑몰 붕괴사고의 현장에 있었습니다. 검사 결과 두뇌를 포함한 상체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문제는 다리인데요. 건물 잔해에 두 다리가 깔려서 자연적인 재생은 불가능한 상태가 됐습니다. 그래서 선택을 해주셔야 합니다. 제가 하는 제안을 승낙하시면 수술용 캡슐 왼쪽 벽에 손을 대주세요. 그러면 지문을 인식해서 서명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현호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선택해주셔야 할 건 나노재건 시술 여부입니다. 유현호씨는 나노머신을 이용해 두 다리를 완전히 새로 만들 수도 있고, 재건 시술을 받지 않고 일반적인 장애인으로 생활하실 수도 있습니다. 전자를 선택하시면 향후 7년간 국가의료보험의 보험료가 대폭 상승하지만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나노재건을 받지 않으시면 1급 장애인으로 분류되어 장애인 전용 복지혜택을 받게 됩니다. 나노재건을 받으시겠습니까? 받으시겠다면 왼쪽 손바닥을 캡슐벽에 대주세요.”

현호는 생각할 시간을 조금 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나노재건에 대해 아는 지식은 일반적인 상식 수준이었다. 우선 재건 시술을 받을 환자의 몸에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나노머신이 다수 투입된다. 나노머신들은 재건이 필요한 부위뿐 아니라 신경 곳곳에 머무르면서 몸 안을 오가는 온갖 신호를 감지한다. 그리고 뼈조직, 근섬유, 피부, 신경 등을 만들어 나간다. 피시술자의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재생이 끝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대 2년에서 4년 정도였다. 그 기간 동안 수시로 병원을 오가며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하면 보조도구도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노재건 시술에는 15퍼센트 정도의 실패율이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환자의 15퍼센트 정도는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신체기관을 되찾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인생을 되찾을 수 있다면 그 정도 위험이 대수일까?

4년 동안 노력하고 고생해서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과 쉽사리 단념하는 길을 앞에 놓고 길게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현호는 캡슐 안에 누워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희망과 단념 사이에는 천국과 지옥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나노재건 시술이 없었다면 그에게는 기계 다리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현호는 왼쪽 손바닥으로 나노재건 계약서에 인증을 마쳤다. 정장을 입은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은 절차를 진행하겠다며 자리를 떴다. 현호는 오른쪽에서 이 과정을 쭉 지켜보던 병원 소속 여성에게 부탁을 했다.

“현재 제 다리 상태를 정확히 알려주세요.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나노머신이 원래대로 되돌려줄 텐데,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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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운명이나 숙명이라는 단어로 인생을 미리 재단해버리는 어리석은 행위는 늘 있어왔다. 저 높은 곳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손에 삶과 미래를 맡겨버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던 시기를 통틀어 ‘암흑기’로 표현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무지, 편견, 선입견, 정보 부족 때문에 도래하는 암흑기는 조금씩 타파할 수 있었다. 아주 느리긴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결국 시대의 흐름을 보며 조금씩 인생관을 바꾸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온갖 박해를 받으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세계관을 선도했던 선각자들을 존경하고, 그들이 먼저 보여준 새 시각을 민주적인 절차로 세상에 도입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제 과학과 기술 발달이 선각자의 역할을 이어받는 시대가 되었다. 기술 발달은 불가능으로 보였던 물리적 한계를 가능으로 바꿔줄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신체적인 장애’에는 돌이킬 수 없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은 대다수 사람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그들이 다시 다수의 삶으로 돌아갈 방법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나노머신을 이용한 재건기술과 생명공학이 어우러진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장애인이란 단어는 결국 없어질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장애가 남아 있지 않을 테니까.

이제 과학과 기술이 인간의 한계를 바꿀 수 있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면 불가능이라는 말로 포장되었던 숙명론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기술을 통한 낙관론과 긍정을 다시 몸에 익혀야 한다. 더 이상 끌려가지 않고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면 인생관 역시 그에 맞게 갱신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김창규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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