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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버지가 점점 개가 돼가는 거 같다.

지난달 중순 무렵, 정용의 어머니는 전화를 걸어와 대뜸 그렇게 말했다.

왜요? 또 두 분이 다투셨어요?

정용이 묻자,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

싸우긴 뭘…. 말 상대가 돼야 싸우기라도 하지…. 이건 그냥 개라니까, 개.

원체 입이 건 어머니이긴 하지만, 사실 정용 또한 아버지를 볼 적마다 속으로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선인장이나 화초, 기둥처럼 좋은 것들 대신 자꾸 개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58년 개띠라서 그런가? 하지만 정용의 아버지는 여타 다른 아버지들처럼 인간과 개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상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도 아니었다. 정용은 동네의 몇몇 그런 아버지들을 알고 있었다. 술만 마시면 ‘그냥 개’가 되어버리는 아버지들, 온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오줌으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거나 전봇대와 어깨동무를 하려고 애쓰다가(바로 자신이 오줌을 갈긴 그 전봇대), 그냥 그 아래 드러누워 잠드는 아버지들 말이다. 그런 아버지들에 비하면 정용의 아버지는 술도 마시지 않았고, 말수도 적었으며, 외출도 잘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저 하루 대부분을 거실 작은 소파에 앉아 오랫동안 신문을 보거나 빨래를 개키거나 발톱을 깎으면서 보내는 아버지. 그런데도 아버지를 머릿속에 그리기만 하면 개가 떠올랐다. 더 자세히 말해 눈곱이 자주 끼는 늙은 시추 한 마리가.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마침 자취방에 있는 겨울옷과 이불을 옮겨놓을 겸, 정용은 근 넉 달 만에 부모님 집을 찾았다. 부모님 집은 경기도 신도시 외곽에 위치한 오래된 연립주택이었는데, 방이 두 칸에 거실과 주방, 욕실로 이루어진 구조였다. 방문은 모두 미닫이로 되어 있고, 웃풍이 심해 겨울이면 거실 유리창에 하우스용 비닐을 치는 집이었다. 그 집 거실에 아버지가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콩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정용의 아버지는 제약회사 영업부에서 20년 가까이 일했고, 이후 치킨집을 열었다가 한 번, 배달전문 족발집을 개업했다가 또 한 번, 크게 넘어진 적 있었다. 그리고 그 후론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채 집 안에만 머물렀다. 대신 정용의 어머니가 24시간 감자탕집 야간 주방일을 시작했다. 정용의 어머니의 입이 걸어진 것도 그때부터였다.

왜 불도 안 켜고 그러고 계세요?

정용이 이불 보따리를 내려놓으며 말을 걸자, 그의 아버지가 힐끔 한 번 쳐다보았다. 그러곤 다시 콩나물이 담긴 소쿠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눈이 다듬는 건가 뭐. 손이 하는 거지.

넉 달 만이긴 했지만, 정용의 아버지는 그새 더 늙어버린 것만 같았다. 짙어진 회색 머리칼이 그랬고, 조금 부풀어 오른 듯한 눈두덩이 그랬다. 정용은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또다시 어머니의 말을 떠올렸다. 개가 되어가는 아버지…. 늙은 시추…. 정용은 예전 15년도 더 산 시추 한 마리를 본 적이 있었다. 그가 아르바이트하던 쌈밥집 주인 할머니가 키우던 개였는데, 치매와 관절염을 동시에 앓고 있었다. 쌈밥집 영업을 시작할 때 소파 위에 올려놓으면 거기 하루 종일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있던 개. 주인 할머니가 부를 때만 살짝살짝 고개를 들던 개. 그 시추는 정용이 아르바이트를 나간 지 두 달 만에 소파 위에서 조용히 죽고 말았다. 주인 할머니가 아무리 불러도 고개를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 시추를 떠올리자 정용은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아버지는 말없이 계속 콩나물만 다듬고 있었다. 불러도 고개를 들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정말 심각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밤이 되고 잠자리에 들려고 했을 때, 정용은 아버지의 이상한 행동을 보게 되었다. 아버지는 안방에 있던 담요와 요를 꺼내와 욕실문 바로 앞에 주섬주섬 폈다. 그러곤 거기에 웅크리고 누웠다. 욕실문 앞은 현관문과 마주 보고 있어서 웃풍이 심한 곳이었다. 어른 한 명이 겨우 지나다닐 만큼 폭도 좁은 곳이었다. 그런 곳에 아버지가 다리도 제대로 뻗지 못한 자세로, 그러니까 마치 개처럼, 누운 것이었다. 개나 누울 법한 곳에….

정말 그렇게 있는 주책 없는 주책 다 부릴 거야!

오랜만에 아들이 왔다고 식당에 나가지 않은 그의 어머니가 소리쳤다. 정용의 아버지는 말없이 한쪽으로 모로 누웠다.

안방에서 자기 싫으면 정용이랑 자라고! 자꾸 걸리적거리게 거기 눕지 말고!

정용은 아버지의 머리맡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 있었다. 화장실을 가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아버지의 몸을 타 넘어가야만 했다.

그의 어머니는 소리 나게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아버지는 계속 눈을 감은 채 누워 있기만 했다. 그러곤 이내 머리 위로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버지….

정용은 아버지의 어깨 근처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아버지, 왜 여기서 이렇게 웅크리고 주무시는 거예요? 제 방에서 주무셔도 되잖아요?

4월이었지만, 아직 밤공기는 차가웠다. 욕실문 앞 바닥은 보일러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

어머니도…. 힘들어서 저러시는 거잖아요.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계속….

정용은 말을 제대로 맺지 못했다. 저도 이렇게 계속 아르바이트만 하고 있잖아요? 정용은 그 말도 하고 싶었다.

다 네 어머니 때문에 이러는 거야….

그의 아버지가 불쑥 이불 아래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용은 이불 쪽으로 고개를 조금 더 숙였다.

나…. 이게. 그러니까 이게. 자꾸 샌다.

정용의 아버지는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집에서 키우는 개도 오줌을 가리는데…. 난, 이제 이게 막….

정용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아버지의 굽은 등의 윤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개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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