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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아, 권정생

opinionX 2017. 9. 21. 14:23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일직교회 뒤편의 7평 남짓한 토담집. 40년 넘게 결핵과 싸우면서 주옥같은 동화를 발표했던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1937~2007)이 1984년 원고료로 받은 80만원을 들여 지은 집이었다. 1996년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을 펴냈던 권 선생을 인터뷰하기 위해 찾았던 울도 담도 없는 집의 작은 방에는 약봉지와 책들이 뒹굴고 있었다. 당시 권 선생은 천직으로 여겼던 일직교회 종지기를 그만뒀다고 했다. 1966년 신장결핵 진단을 받고 오른쪽 신장을 적출하는 등 오랜 투병생활이 그의 육신을 쇠약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권 선생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귀국했다. 4년 뒤 터진 한국전쟁은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난리통에 이곳저곳을 떠돌다 몹쓸 결핵을 얻었다. 가난도 피할 수 없었다. 28살 때 집을 나와 수년간 구걸로 연명했다. 어렵사리 교회 종지기 자리를 얻은 그는 1969년 <강아지 똥>을 발표하며 동화작가로 데뷔했다. 권 선생은 평생 남과 다투거나 흥정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원고료도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대로 받았다. 안 주면 그만이었다. 그는 몸이 아프면 누워 있다 정신이 맑아지면 <몽실 언니> <밥데기 죽데기> <까치울던 날> 등과 같은 동화를 굽는 데 열중했다. 권 선생은 “하루에 원고지 한 장도 쓰고, 어떤 때는 10장도 쓰지만 그때만큼은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100여편의 동화와 동시, 산문집을 빚어놓고 2007년 세상을 떴다. 사인은 결핵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권 선생이 의료사고로 숨진 사실이 10년 만에 밝혀졌다. 대구지법은 지난 7월 권 선생의 동생 권정씨가 대구가톨릭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병원은 방광조영촬영술을 실시하기 전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를 모르고 영면한 권 선생은 하늘나라에서 억울해할까. 그렇지는 않을 듯하다. “난 더러운 똥인데,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을까?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텐데….” 그렇게 민들레의 거름이 된 ‘강아지 똥’처럼 평생 남을 배려하며 살다 세상을 뜬 그 이기에…. 하지만 그의 맑은 동화와 명징한 글을 접할 수 없게 된 독자들의 심정은 안타깝고, 억울하기만 하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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