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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갈았다. 정오 무렵이었다. 확성기 소리를 들었다. 칼 갈아요, 칼. 확성기 소리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목청 좋은 사람의 노랫소리 같았다. 가락이 뛰어났다. 한두 해 연마한 목청이 아니었다. 양파를 썰다 말고 뛰어나갔다. 어르신. 청명한 햇살을 받으며 그가 뒤돌아보았다. 칼 갈아요? 다른 리듬으로 그가 물었다. 건너편 디저트 집에서 나온 사람이 먼저 대답했다. 저희 칼 갈게요. 옆집 레스토랑에서 고개를 빼고 물었다. 얼마예요? 삼천원. 햇살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의 발치에 칼이 가득했다.

내 어머니는 칼을 잘 가는지 하나 확인해 본 다음 들고 가라고 했지만, 나는 주방에 있는 모든 칼과 가위를 가지고 나갔다. 그는 칼을 가는 데 두 개의 숫돌을 사용했다. 일제 숫돌이라고 은근한 자랑을 덧붙였다. 숫돌은 이미 닳을 대로 닳아 오목하게 얄팍해져 있었다. 숫돌 받침은 삽자루를 잘라 직접 만든 모양새였다. 그는 숫돌 양면의 각기 다른 결을 이용해 세 차례 갈아 날을 세웠다.        

자신감과 겸손함이 공존하는 손놀림이었다. 얼마나 쓰면 이렇게 얄팍해지는지 물었다. 얼마 못 쓴다고 말을 얼버무렸다. 그 얼마가 얼마인지 시간의 흐름이 가늠되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부터 칼을 가셨냐 물었다. 전차가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라고 대답했다. 그게 몇 년인지는 헤아릴 수 없으나 전차 가격은 확실히 기억했다. 2원50전. 정확한 화폐단위로 말하자면 2환50전. 그때 칼 하나 갈면 3환을 받았다고 한다. 전차 본 적 있어요, 전차? 아니요. 사진으로만 봤어요. 내가 그거 타고 다녔어. 전차가 가는 곳이면 다 가서, 다 갈았지. 그래서 이쪽으로는 안 와봤어. 망원동은 그때 갈대밭이었거든. 사람도 안 살고. 그러니 갈 칼이 있나. 그러고는 열심히 숫돌질을 이어나갔다.

갈 칼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아쉬웠다. 그를 조금이라도 더 붙들고 있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젓가락이라도 다 모아 오고 싶었다. 그가 숫돌질 하는 모습을 한나절이고 앉아 바라보고 싶었다. 노닥노닥 얘기나 하며. 그냥 그러고 싶었다.     

소설가적 상상력으로 그의 인생을 가늠해보거나 드라마틱하게 각색하지 않고, 그냥 그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노인의 칼 가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칼 가는 소리를 듣기 좋은 날이었다. 토요일 정오, 맑은 햇살.

엄마는 뒤늦게 나와, 언제 다시 이 길을 지나겠느냐 물었다. 집에 있는 칼들을 가져올 터이니 갈아달라고. 엄마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는 대답 없이 연장을 챙겨 길을 떠났다. 그는 당분간 이쪽으로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의 확성기에 응답할 사람은 이미 다 나와 칼을 맡겼고, 자신의 칼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자신이 잘 알 터이니. 칼이 다시 무뎌질 즈음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가방을 메고 골목을 돌아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문득, 요즘엔 무얼 타고 다니며 칼을 가는지 궁금해졌다.

나도 특별한 칼 하나쯤 갖고 싶었다. 나만의 칼. 중국집 주방의 커다란 사각 칼 같은 것. 동태의 머리를 내려치고 내장을 가르는 생선장수의 칼 같은 것. 근사한 회칼을 가지고도 싶었다. 그래서 결국 주방으로 들어오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요리사들은 자기만의 칼을 갖고 다닌다고 했다. 칼도 직접 갈아 쓰는 법이라고 했다. 칼을 잘 드는 상태로 만들어 놓는 것도 요리의 일부니까. 전용 칼과 전용 숫돌은 요리사의 분신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미용사의 가위처럼.

하지만 나는 식당을 열면서 특별히 칼을 새로 마련하지 않았다. 그냥 쓰던 칼에 하몽 커팅용 칼을 추가했을 뿐이다. 박이나 늙은 호박 껍질을 벗기는 데 용이한 특이한 모양새의 칼도 하나 있지만, 그리 비싸거나 특별한 칼은 아니다. 일본에서 좋은 숫돌을 하나 장만하기도 했는데, 한번 실패한 이후로는 다시는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래도 훌륭한 요리사는 될 수 없을 모양이다.        

요리를 하려면 칼 가는 법부터 배워야 하는 거 아닌가? 제대로 된 칼도 하나 없이 요리는 무슨 요리. 요리는 둘째치고 언젠가는 좋은 회칼 하나쯤 간직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내 할머니는 사기그릇 밑굽에 대고 칼을 갈았다. 먼저 사기그릇 밑굽 거친 부분에 쓰윽 쓱 쓸고 난 다음에야 칼을 사용했다. 칼은 반짝 잘 드는 척하지만, 몇 번 쓰고 나면 다시 무뎌졌다.         

사실 할머니의 칼은 하나같이 무딘 상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그랬다. 칼은 언제나 그 양반이 갈아줬다고, 얼마나 꼼꼼하게 잘 갈았는지 모른다고, 할머니는 회상했다.          

그녀가 그냥 되는 대로 아무 사발이나 잡아들고 칼을 갈아 쓰는 것은, 할아버지의 벼린 칼맛을 결코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칼에 대한 별 욕심이 없는 그녀지만, 밤칼만큼은 끔찍이 아꼈다. 과도보다 조금 작은 크기에 칼자루가 뭉뚝하고 네모난 모양의 날을 가진 칼이다. 쉽게 구할 수 없는 칼이라고 했다. 가을이면 그녀는 소일거리로 밤을 깎아 업자에게 넘겼는데, 한 포대에 삼천원인가 오천원인가를 받았다.        

밤을 쳐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러면서도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다. 밤알 표면이 예쁘게 나오려면 칼이 무디면 안된다. 그런데 밤을 치다보면 칼은 쉽게 무뎌진다. 그래서 밤칼은 깎은 밤을 수거하러 온 업자가 매번 새로 갈아주고 갔다.      

두어 번 밤칼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는데, 밤 껍질과 함께 휩쓸려 나갔는지, 누가 와서 가져갔는지, 그녀는 두고두고 혀를 차며 밤칼 단속을 했다.

반나절 꼬박 앉아 그 애를 쓰며 오천원이라니. 그만 두시라 했다. 그녀는 재미로 하는 거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고는 얼른 칼을 숨겼다. 오천원이 아니라 칼을 빼앗길까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노인이라고 놀면 쓴다냐. 뭐라도 해야제. 그러면서 다시 묵묵히 밤을 쳤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칼을 무디게 만들기 위해 밤을 깎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와서 무딘 칼을 날렵하게 만들어 놓기를 바란 것이라고, 마당 세면대에 쭈그리고 앉아 숫돌질을 하던 할아버지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라고. 이거야말로 소설가적 상상력이다.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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