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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청와대 지시로 민간인 불법사찰의 증거를 인멸했다”고 폭로한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그의 고백을 처음 접했을 때 반신반의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라면 몰라도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는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충격적인 폭로가 계속됐습니다. 청와대·총리실·고용노동부 등에서 그의 입을 막기 위해 1억원이 넘는 돈을 건넨 사실까지 드러났습니다. 장씨에게 컴퓨터 하드디스크 파기를 지시한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과 부하였던 최종석 전 행정관은 구속됐습니다. 지난달 말에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국회의원에서 산부인과 원장까지 전방위 사찰을 자행했음을 보여주는 문건들이 공개됐습니다. 방송인 김제동·김미화씨는 국가정보원의 사찰을 받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4·11 총선의 ‘추’가 기울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순진했던 모양입니다. 신문사 밥을 꽤 오래 먹고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는 깜깜했던 것이지요. 불법사찰 파문이 확산되면서 오히려 여당 지지층이 단단히 결집했다고 합니다. 야당에서 ‘보수세력의 단결력이 역대 어느 선거보다 놀라운 수준’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민주통합당 김용민 후보 발언까지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총선 판세는 초박빙 양상이라는 게 각 당과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전언입니다. 민간인 불법사찰이 민주주의를 짓밟은 국기문란 사건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새누리당조차 ‘노무현 정부도 사찰했다’며 물타기를 할지언정 사찰의 본질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왜 여론의 팽팽한 흐름이 깨지지 않는 걸까요. 미국산 쇠고기 문제처럼 피부에 와닿지 않아서일까요, 권력은 원래 다 그런 것이라는 체념일까요.
혹시,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도 버거운데 민주주의라니 웬 사치냐,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김종익씨는 2008년 촛불집회가 계속될 무렵 블로그에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하는 ‘쥐코’ 동영상을 링크합니다. 이 동영상이 평범한 소시민이던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습니다. 김씨는 일면식도 없는 이광재 전 강원지사와 동향(강원 평창)이라는 이유로 사찰 대상에 오릅니다. 회사 대표직에서 물러나고 지분도 포기하지만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만족하지 못합니다. 수사의뢰를 받은 경찰은 처음에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가 담당 수사관을 교체한 뒤 사건을 검찰로 보냅니다. 김씨는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에 불복해 헌법소원을 냅니다. 헌법재판소에서도 사건 처리가 미뤄지자 견디다 못한 그는 2010년 사찰 사실을 폭로합니다.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찰 사건을 겪은 뒤 그는 경제활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수입이 ‘제로’입니다. 1년 반 정도는 저축한 돈으로 버텼지만, 자꾸 빚이 늘어갑니다. 상당수 지인들은 연락을 끊고, 정부는 사과 한마디 하지 않습니다. 김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이긴다 해도 ‘사찰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와 가족의 삶은 파괴되었습니다.
KBS노조 불법사찰과 관련한 문건 공개 I 출처:경향DB
민주주의의 위기는 곳곳에서 평범한 시민의 삶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경남 밀양에서는 74세 노인이 초고압 송전철탑 건설에 반대하다 분신해 숨졌습니다. 주민들은 사업 진행 과정이 비민주적이었다고 비판합니다. 부산 기장군 장안읍 주민들은 고리 원전 1호기의 완전 정전(블랙아웃) 사고가 한 달 넘게 은폐된 사실이 드러나자 충격에 빠졌습니다. 분노한 주민들은 “보상도 대가도 필요없다”며 1호기의 즉각 폐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경기 수원에서 납치된 28세 여성은 112에 전화를 걸어 살려달라고 호소했지만 사실상 방치되었습니다. 경찰은 무능을 감추기 위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습니다. 정권안보를 위해서라면 ‘명박산성’ 축조도 마다않는 경찰이 시민의 생명에는 둔감했던 것이지요. 공권력이 정권의 심부름꾼 노릇에는 충실하면서, 자신에게 녹을 주는 시민을 외면하는 현실은 민주주의 위기의 또 다른 증좌입니다.
지난 4년간 목도했듯이 민주주의는 취약한 존재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주아리는 <나는 투표한다, 그러므로 사고한다>에서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민주주의는 어쩔 수 없이 약하고 불안정하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성향 때문에 민주주의는 힘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이는 그가 이야기하는 정치의 본질과도 통합니다. “정치란 ‘인간 세계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사상이 붕괴되는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정치의 전제는 여러 가지 상황의 흐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고 바꿀 수 있다는 데 근원한다.” 아무리 투표해봐야 세상은 달라지지 않더라는 회의론, 현대의 대의민주주의는 특정세력을 위한 과두제로 전락했다는 비판론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 여기서 공동체의 진로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길이 투표라면, 투표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사치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고, 투표는 나의 삶을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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