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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형사사법의 정의는 무엇인가? 국가에 있어서 정의란 범죄 피해자를 대신하여 범인을 검거하고 그 죗값을 묻는 것이 아닐까? 사회계약론에 바탕을 둔 근대형사사법체계에서는 개인보다는 ‘사회보호’를 강조했다. 국가의 기능은 당연히 범죄통제를 통해 사회안정 도모에 치중했다. 범죄행위자인 가해자에게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오늘날 가해자의 형사사법적 권리나 지위는 법적·제도적으로 어느 정도 담보돼 있다.

범죄피해자는 어떠한가? 그들에게 있어서 정의란 피해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일 것이다. 문제는 저소득층, 여성·아동 등 사회적 약자들이다. 이들이 자력으로 피해를 회복하기에는 사회·경제적 힘이 모자란다. 하지만 이런 범죄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미비하다. 이뿐만 아니라 범죄의 1차 피해자이면서도 형사사법절차에서는 언제나 제3자적 지위에 머물러 있었다. 어쩌면 국가는 그것이 효율적인 형사사법체계의 운용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범죄 피해자는 사망·상해 등 직접 피해 이외에도 피해 이후에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에 직면한다. 정신적 충격과 건강 악화 등의 신체적 부담, 의료비나 실직 등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의 시간적·정신적 부담 등이 그것이다. 이런 2차 피해를 최소화해 피해자를 조기에 일상생활로 복귀시키는 것은 피해자 개인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넓게는 범죄 피해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극소화시키는 일이다.

미국은 1982년 ‘범죄피해자를 위한 대통령특별위원회’의 보고서를 통해 모든 경찰들에게 범죄피해자 보호프로그램에 대한 숙지 훈련을 지시했고, 일본의 경우에도 1974년 미쓰비시 중공업 빌딩 폭파사건을 계기로 피해자들에게 국가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됨으로써 1980년 범죄피해자 급부금 지급법이 제정됐다.

우리나라도 헌법 제30조에서 범죄피해자들이 국가로부터 구조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선언했고 현재는 범죄피해자보호법을 제정해 그 기반을 마련했다. 경찰청에서도 2004년 8월 범죄피해자보호 규칙을 제정하여 강력사건 피해자들을 위한 피해자심리 전문요원(CARE팀)을 선발, 배치했다. 그러나 인력·홍보 등의 부족으로 피해자 지원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범죄피해자 유족이 서울 서부지검 범죄피해자 지원센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올해는 경찰 창설 70주년을 맞이한다. 경찰은 2015년을 ‘피해자보호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피해자보호 전담체계를 재정비했다. 경찰청에 피해자지원담당관을 두고 각 지방청은 피해자보호팀을 구성하여 일선 경찰서의 피해자전담경찰관과 함께 피해자지원에 나서게 된다. 피해자전담경찰관은 사건초기부터 상담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고 각종 피해지원 정보를 제공함으로서 범죄피해 회복의 골든타임을 수호한다. 또한 사건 이후에도 피해자에게 심리치료와 연계한 상담과 주기적인 연락을 통해 정상적인 사회생활 복귀를 도모할 것이다.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을 보호할 의무는 1차적으로 국가에 있다. 범죄 피해자는 국가와 사회가 보듬어야 할 이웃이다. 2차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범죄 피해자에 대한 국민적 시선의 전환이 필요하다. 피해자의 마음까지 품겠다는 경찰의 피해자 보호 활동이 구호가 아닌 내실 있는 실질적인 지원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김판중 | 광주경찰청 피해자보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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