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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4월23일 오후, 자신에 대한 사형 선고문이 십여 분에 걸쳐 낭독되는 것을 다 듣고 난 뒤에 전봉준은 천천히 말한다. “정부의 명령이라면 목숨을 바친다 해도 아까울 것 없다. 다만 나는 바른길을 걷고 죽는 자인데 역적의 죄를 적용한다니 그것이 천고에 유감이다.” 바로 이튿날 서둘러 교수형이 진행되었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읊은 시는 다음과 같다. “때가 이름에 천지가 모두 힘을 합하더니, 운이 다함에 영웅도 어찌할 수 없구나. 백성 아끼고 정의 세움에 나 잘못 없건만, 나라 위한 붉은 마음 알아줄 이 그 누구랴.”

모진 고문으로 인해 혼자 걸을 수조차 없는 상태로 끌려나온 전봉준이 의연함을 잃지 않고 또렷한 정신으로 최후진술에 임하는 모습은 참관했던 일본 기자들마저 경탄하게 만들었다. 이 당당함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추호의 사심도 없이 정의로운 길을 걸어왔다는 내적 성찰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걸어온 삶이 법에 저촉된다면 죽음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으나, 그 죽음 역시 부끄러움 없이 당당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다.

지난 29일 자신에 대한 검찰의 구형이 이루어진 자리에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행한 최후진술에서도, ‘당당함’을 본다. 정치 입장이나 개인 성향은 차치하고, 그의 이 당당함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청와대 관행에 따라 합법적인 방법으로 수행했다. 법조인으로 일했던 제가 불법을 동원할 이유는 없었다”는 진술에 드러나듯, 온갖 의혹과 혐의들이 제기되어도 법적으로 문제없음을 입증할 수만 있으면 그는 당당할 것이다. 마지막에 판사에게 당부한 “법치주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바란다”는 말 역시, 무섭게 다가온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읽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의와 부끄러움이 전제되지 않는 당당함이라는 것, 그 무게가 얼마나 될까.

전봉준은 교수형을 당하기 직전에 “종로 네거리에서 목을 베어 오가는 사람에게 내 피를 뿌릴 일이지, 어찌 이리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죽이느냐”라고 말했다 한다. 그 말은 123년 만에 이루어지게 되었다. 올해 봄 종로1가 거리에 녹두장군의 동상이 세워지게 된 것이다. 이제 그 당당함의 무게를 겸허한 마음으로 만나볼 일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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