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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팅 힐> <러브 액츄얼리>의 배우 휴 그랜트는 대단한 미남이다. 지적이고 자상하고 위트 넘친다. 런던에만 집이 17채 있을 정도로 부유하다. 1995년 그는 큰 사건을 저질렀다. 심야에 자기 차의 뒷좌석에서 매춘부와 구강성교를 하다가 경찰에 체포된 것이다. 참으로 이상하다. 그랜트처럼 잘생긴 갑부라면 술집에서 젊은 여성을 유혹해 하룻밤 정을 나누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터이다. 그런데 왜 매춘부에게 돈까지 내고 성교를 했을까? 아니할 말로, 남자가 그랜트라면 돈을 내야 할 쪽은 오히려 여자 아닐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우리의 ‘상식’은 제아무리 완벽한 남성일지라도 뭇 여성들에게 돈을 받고 성을 파는 일은 없다고 말한다. 성매매는 아즈텍, 세르비아, 이란, 마사이, 아이누, 발리 등 거의 모든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된다. 어느 사회에서나, 성 구매자는 절대다수가 남성이며 성 판매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남성들도 성을 팔긴 하지만 이들을 찾는 고객은 거의 전적으로 남성이다. 사람들은 왜 성을 사고파는가? 왜 주로 남성이 사고, 주로 여성이 파는가? 진화의 관점에서 이 질문에 답해 보자.

먼저 일러둘 것이 있다. 성매매를 진화의 틀로 설명한다고 하면 흔히 이런 거부반응이 나온다. “남성의 성욕은 본능이니 성매매는 어쩔 수 없다고? 더러운 헛소리군!” 이따금 환호하는 반응도 있다. “오! 성매매는 어쩔 수 없다고? 반가운 소식이군!” 사실은 둘 다 틀렸다. 과학은 어떤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설명할 뿐이다. 결코, 그 현상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려 함이 아니다. 지진을 연구하는 지질학자들이 지진은 필요악이라 부르짖지 않는 것과 같다. 어쨌든 성매매가 왜 일어나는지,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 이해한다면 성매매를 허용 또는 금지하는 정책들에 따르는 이득과 손실을 정확히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시 그랜트로 돌아가자. 왜 그는 일반인과의 뜨거운(?) 만남 대신 매춘부와의 거래를 택했을까? 답은 이렇다. 남성들은 성교에 대한 대가로 매춘부에게 돈을 주지 않는다. “성교만” 하는 대가로, 즉 끝나고 사라지라는 뜻으로 매춘부에게 돈을 준다. 이처럼 남성들이 낯선 여성과 “성교만” 하고자 기꺼이 돈까지 내놓는 까닭은 남녀의 진화된 성심리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먼 조상들이 번식에 성공하려면, 배우자를 만나서 아기를 낳은 다음 이 아기가 어른이 될 때까지 무사히 길러내야 했다. 이때 조상 여성이 아무리 줄이려 애쓴들 반드시 짊어져야 했던 필수 투자량은 매우 많았다. 배란, 아홉 달의 임신, 위험한 출산, 수년간 젖 먹이기, 십수년간 보살피기 등등 산 넘어 산이었다.


우리의 조상 남성도 자신과 결혼한 여성이 낳은 친자식들에게는 아버지로서 상당히 많이 투자했다. 그러나 남성의 필수 투자량은 여성의 그것보다 매우 적었다. 그저 한 번의 성관계면 충분했다. 오늘 처음 만난 여성을 임신시킨 뒤 바로 헤어졌는데 그 아이가 무사히 어른으로 자랐다면, 조상 남성으로선 극히 적은 비용을 치르고서 번식에 성공한 셈이다.

이처럼 저비용으로 번식에 성공할 기회는 여성이 아니라 남성에게만 열려 있었기 때문에, 자연선택은 되도록 많은 상대와 일시적 성관계를 맺으려는 심리를 남성에게 장착시켰을 것이다. 그래서 남성들은 처음 본 여성에게 마음을 온통 바치는 일 없이 오직 성관계만 맺는 것을 상상하기도 좋아하고(성적 몽상, 춘화, 야한 동영상) 실제로 하기도 좋아한다(외도와 성매매).

왜 어떤 여성들은 성을 파는가? 물론 여성도 낯선 남성과 외도를 하지만, 이는 남성들처럼 성관계 상대의 수를 무작정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득을 얻기 위해서다. 매춘부들은 주로 경제적인 이유로 성을 판매한다. 다른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어떤 이는 먹고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성을 판다. 어떤 이는 수익이 짭짤하니 성을 판다. 어떤 이는 그냥 즐거워서 성을 판다. 기본적으로, 성에 대한 수요가 있어서 어떤 여성들은 시장에서 성을 공급한다.

요약하자. 성매매는 먼 과거의 진화적 환경에서 남녀가 자원과 성을 맞바꿨던 행동에서 유래했다. 시장경제가 발달한 오늘날에는 성매매가 더 빈번하고 다양하게 행해지고 있다. 성매매가 진화된 인간 본성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성매매에 대한 법적, 정책적 판단이 훨씬 더 세심하게 이루어져야 함을 뜻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몰이해는 불필요한 갈등과 비용만 초래할 뿐이다.

예를 들어, 여성가족부가 발간한 성매매 예방교육 자료를 보자. 근본적으로 인간의 성욕은 남녀 차이가 없으며 남성의 성욕은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엄연히 존재하는 성차를 부정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남성은 성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여성이 성욕을 통제하기보다 더 어렵다. 성매매처럼 민감한 문제일수록 진화된 인간 본성을 십분 고려하는 현명한 접근이 필요하다.


전중환 |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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