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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의 ‘민주주의 역주행’ 사례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국민의 기본권을 탄압하고 민주주의 기틀을 훼손한 공직자들이 처벌을 받거나 불이익을 당하기는커녕 그 사건을 계기로 더욱 승승장구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언론자유 침해의 상징처럼 돼버린 미네르바 사건이나 <PD수첩> 사건의 수사를 맡았던 검사들이 승진·영전했는가 하면, 촛불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한 판사는 법관의 최고 영예라는 대법관으로 군림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KBS 국회 민주당 대표실 도청의혹 사건에 연루됐던 한선교 의원을 엊그제 19대 국회의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으로 내정했다고 한다. 한 의원은 지난해 6월 국회 문방위에서 KBS 수신료 문제를 다룬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녹취록을 읽었다가 민주당에 의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으나 검찰과 경찰의 소극적 수사로 면죄부를 얻은 바 있다. 공영방송 기자의 제1야당 대표실 도청에 깊이 연루된 인물을 언론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회 문방위원장으로 내정한 것은 ‘민주주의 훼손사범의 영달(榮達)’ 현상에 또 하나의 사례를 추가하는 셈이다. 아울러 누가 보더라도 문방위원장으로서는 자격 미달인 인물을 보란듯이 그 자리에 앉히려는 새누리당은 과연 제정신을 가진 집단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경향신문DB)


한 의원의 부적격 사유는 그가 도청의혹에 연루됐다는 사실 그 자체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을 무렵 면책특권을 들먹이며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국회의원이 외압에 굴복하지 않고 양심에 따라 의사를 표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부여된 면책특권을 자신의 범죄행위를 숨기기 위해 악용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민주당을 향해 “(정치공세 등의) 엉뚱한 짓 하지 말고 KBS와 진실게임이나 잘해 보라”며 조롱하기도 했다. 국회의원 이전에 시민으로서의 평균적 양식이나 자질에도 미치지 못하는 언행을 일삼았던 것이다. 이러한 인물이 문방위원장이 된다는 것은 도청의혹의 피해자인 민주당, 나아가 국민을 모욕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번 사안을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새누리당의 최고권력자이자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의원의 언론관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박 의원은 원칙과 소신, 절제 등의 덕목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지만 민주주의와 인권, 언론자유 등과 관련해서는 대체로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적 친박 인사라는 한 의원이 문방위원장이 된다면 박 의원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고 여기지 않을 수 없다. 한 의원이 자신의 ‘도청 연루’에 대해 일말의 책임의식이라도 느낀다면 즉각 자진사퇴해야 마땅하다. 그가 끝내 사퇴를 거부한다면 새누리당은 내정을 철회하고 다른 인물을 찾아야 한다. 문방위원장 재목이 ‘도청 연루자’밖에 없다면 말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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