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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비가 26일째 곡기를 끊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숨진 안산 단원고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다. 목숨 건 단식의 이유는 분명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딸이 왜,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다는 거다. 딸의 죽음에 책임 있는 사람들을 처벌해달라는 거다. 그리고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 자신들을 참여시켜달라는 거다. 집권여당과 제1야당의 대답은 그러나 차가웠다. 유가족의 간절한 호소를 외면하고 ‘무늬만 특별법’을 만드는 데 합의했다. 시민을 지지하고 부축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시민을 사지(死地)로 몰아넣고 있다.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안은 새누리당 주장을 대부분 반영한 것이다. 세월호 특별검사는 상설특검법에 따른 특검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하고, 진상조사위원회에 유족 대표가 추천하는 3명을 포함시키도록 했다. 피해자 가족의 핵심 요구인 진상조사위의 수사·기소권 보장은 무산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절충안으로 야당 또는 진상조사위에 특검 추천권을 줄 것을 요구했으나 역시 반영되지 않았다. 현행 특검법에 따르면 세월호 특검은 법무부 차관, 법원행정처 차장, 대한변협 회장 및 국회 추천 인사 4명으로 구성된 후보추천위에서 2명을 추천해 이 중 1명을 대통령이 임명하게 된다.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청와대가 수사 주체인 특검을 고른다는 말이다. 결국 ‘셀프 특검’을 통한 ‘셀프 면죄부’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피해자 가족들이 절망하고 분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27일째 단식중인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47)가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참사 가족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광화문에서 외침'문화제에 참석해 공연을 지켜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새정치연합의 책임이 크다. 박영선 원내대표는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아 유족과 함께 행진하며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그러더니 며칠 만에 ‘백기’를 들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교황 방한 전에 협상을 끝내야 한다는 조바심 탓인가, 검찰 소환을 앞둔 의원들을 고려한 선택인가. 어떠한 사정이 있었든 야당의 ‘변심’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시민들이 목숨 걸고 싸우는데, 야당이 밀실 합의를 해주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야당이 이 모양이니 여당 의원이 단식 중인 유가족을 폄훼하는 목불인견의 지경이 된 것이다.

여야 합의는 유가족에 대한 배신일 뿐 아니라 주권자의 뜻을 외면한 처사이기도 하다. 지난달 말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진상조사위에 수사권을 줘야 한다’는 응답이 과반인 53%로 나타났다. 참사의 원인과 책임소재가 얼마나 밝혀졌느냐는 물음에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부정적 평가가 64%에 이르렀다. 민심이 진실을 갈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여야는 즉각 세월호 특별법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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