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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28사단 윤모 일병 폭행사망과 관련해 군 당국이 나름대로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듯하다. 국방부가 ‘군 인권업무 훈령’을 전면 개정해 국방인권협의회를 설치하고, 대대급 이상 야전부대에 인권교관을 임명하기로 한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협의회는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의장을 맡고, 육·해·공군 법무실장과 인권 담당관, 외부 전문가 등이 참가하게 된다고 한다. 군 당국의 이런 모습을 접하면서 ‘이제는 뭔가 달라지려나’라는 기대도 갖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군내 인권문제를 개선하려는 선의와 진정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일단 소나기만 피하자’는 눈가림용 술수는 아닌지 의심하게 만드는 일들도 발생하고 있다. 우선 군 인권침해 피해자를 돕기 위해 개설될 예정인 민간상담전화를 병사들이 이용하면 징계하겠다는 군 당국의 방침이 나왔다. 육군본부가 6월3일 각 부대에 공문을 보내 “민간기구인 군인권센터의 군내 인권문제 상담전화 ‘아미콜(Armycall)’을 이용하면 군인복무규율 25조를 위반한다는 점을 장병에게 상기시키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육군은 또 아미콜이란 명칭을 쓰지 못하도록 ‘아미콜’ 단어 상표권을 특허청에 출원했다고 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미피적 고의에 의한 2차 살인' (출처 : 경향DB)


군 당국은 인권문제를 군 내부에서만 쉬쉬하고 다루면서 민간상담은 봉쇄하고 싶겠지만 바로 이 같은 폐쇄적 자세가 윤 일병 사건을 낳은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군 당국이 병사들의 민간상담을 틀어막는 것은 지금까지의 그릇된 관행을 계속 고수하겠다는 아집으로 읽힐 뿐이다. 지금이라도 군 당국은 징계 운운하는 소아병적 자세를 버리고 민간기구와 서로 긴밀하게 협력함으로써 진정으로 인권문제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한편 윤 일병이 사건 당일 잠시 치료를 받았던 국군양주병원의 이재혁 원장(대령)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열린 ‘전군 특별 인권교육’에서 “윤 일병 사건은 이슈화 노린 마녀사냥” “시민단체는 소송꾼” 등의 망언을 일삼았다고 한다. 윤 일병 사건에 일말의 도의적 책임이 있는 그가 특별 인권교육 시간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했다니 어이가 없다. 장관이 특별 지시한 인권교육에서조차 이런 발언이 나왔다는 것은 인권문제에 대한 고위 간부들의 상황인식을 잘 보여준다. 간부들의 이런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협의회를 만들고, 특별교육을 실시해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군 당국은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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