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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거나 “군대는 ×으로 밤송이를 까라면 까야 한다”는 말은 60~70대 어르신 시절의 군대 속담이다. 이 말이 상징하는 야만적 병영문화가 쌍팔년도도 아닌 21세기 대한민국 군대에서 여전히 통용되는 게 놀랍다. 최근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 구타 사망 사건을 보면 오히려 더 나쁜 방향으로 진화한 느낌마저 든다. 군의 현실과 미래가 참으로 암담하다. “참으면 윤 일병, 터지면 임 병장”이 새로운 군대 속담이 됐다. 병영문화 개선과 군 인권의식 강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군대 내의 뿌리 깊은 악습은 군 조직의 폐쇄성과 불통 때문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바다. 윤 일병은 죽을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선임병의 가혹행위를 지휘관이나 부대 외부에 알릴 수 없었다. 내부 면담과 소원수리, 국방헬프콜 등의 소통 장치는 아무 소용이 없거나 군 생활을 더욱 어렵게 할 뿐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소원수리에 쓰면 관심병사가 되는’ 병영문화는 윤 일병 사망 과정을 지켜본 수많은 병사들마저 방관자로 만들었다. 구타·가혹행위·자살·총기난사 등 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치권과 군이 거창하게 떠들었던 군 개혁과 병영문화 개선 노력의 결과가 이렇듯 참담하다.

지난 4월11일 윤모 일병 폭행 사망사건 현장검증에서 한 선임병이 윤 일병에게 가한 가혹행위를 재연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 이유 또한 군의 폐쇄성에 있다고 하겠다. 군은 사고가 터진 뒤에도 조사, 가해자 처벌 등 모든 처리 과정을 독점하면서 외부에는 좀처럼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보안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내부의 잘못을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측면이 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감시받지 않고 통제받지 않는 조직은 문화가 바뀌지 않는 법이다.

현재 국회에는 10여건의 이른바 ‘윤 일병 방지법’이 논의 중이다.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이 발의한 ‘군인복무기본법’과 새정치민주연합 안규백 의원이 발의한 ‘군인 지위 향상에 관한 기본법’ 등은 수년 동안 처리되지 않고 있는 법안들이다. 사적 제재와 병 상호간 명령 금지 등을 통해 가혹행위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고 군인의 기본권을 보장하며 국회에 군사옴부즈만을 두고 군대 내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영창제도를 폐지한다든가 군사재판의 재판관을 일반 법관에게 맡기는 등의 방안도 나왔다. 문제는 군과 정치권의 의지다. 군은 2011년 김포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군 인권법 제정 권고를 묵살했다. 옴부즈만 제도도 2005년 연천 28사단 총기난사 사건 후 추진했다가 유야무야된 바 있다. 제2의 윤 일병을 막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강력한 입법 의지와 군의 태도 변화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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