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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민생을 외치는 국회의 이율배반적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일이 또 발생했다. 통학차량의 어린이 갇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하차 확인 장치 설치를 의무화하는 이른바 ‘잠자는 어린이 확인 법안’(슬리핑 차일드 체크법·도로교통법 개정안)이 8월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지난 7월 경기 동두천에서 통학차량에 어린이가 7시간 방치돼 숨진 사고가 발생하자 10여건의 유사법안이 제출됐고, 여야 지도부가 8월 국회 통과에 합의했던 법안이다. 여야 사이에 이견이 없어 무난한 처리가 예상되던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이유는 여야의 무관심과 태만, 무책임 탓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지난달 28일 전체회의를 열어 해당 법안을 통과시켜 법사위원회에 넘겼으나, 법사위 전체회의에는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행안위에서 같은 날 통과된 재난안전법은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 통과까지 이뤄졌으나, 이 법안은 누락됐다. 여당 원내대표도 인정하듯이, 여야 지도부나 법사위·행안위 간사들이 조금만 관심을 뒀어도 어처구니없는 누락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여야가 쟁점 법안에만 전력을 쏟는 통에, 정작 어린이 생명과 안전을 다룬 법안은 방치한 꼴이다. 당략과 잇속이 걸린 사안에는 그리 적극적이면서도, 시급한 민생 안건에는 이토록 무사안일이니 국회 신뢰가 바닥인 것이다.

사실 ‘잠자는 어린이 확인’ 시스템 법안은 2016년 유치원버스 사고가 발생한 뒤 발의됐었는데 그간 창고에 묵혀 왔다. 당시 법안이 제때 처리됐다면 7월 동두천 사고 등은 피할 수 있었을 터이다. 교훈조차 못 새기고 이번에도 정쟁에 매몰되어 법안 처리를 몰각했다. 교육부는 2일 유치원, 초등·특수학교의 모든 통학버스에 안전 확인 장치를 설치하기 위해 46억원의 예산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안전 장치 설치를 의무화하고 지원근거를 마련하는 법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온전한 진행에 차질이 빚어질까 우려된다.

정기국회가 3일부터 100일 회기로 열린다. 여야 간 각종 쟁점 법안과 예산안을 둘러싸고 대치가 가팔라 난항이 예상된다. 하지만 고단한 민생을 챙기는 데는 여야가 함께 팔을 걷기를 바란다. ‘잠자는 어린이 확인 법안’은 물론 여야가 8월 국회에서 처리키로 했다가 약속을 못 지킨 상가임대차보호법, 규제 관련 법안이라도 우선 처리해야 한다. 입으로만 민생을 떠들지 말고 하나라도 결과물로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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