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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 서비스를 문제 삼아 이미 출발한 항공기를 되돌리고 승무원을 내쫓은 이른바 ‘땅콩 회항’의 장본인인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이 보직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그의 부친이자 한진그룹 최고의사결정권자인 조양호 회장이 소집한 긴급 임원회의에서 조 부사장이 퇴진 의사를 밝히자 조 회장이 이를 수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항공 부사장과 등기이사직은 계속 유지할 것으로 알려져 임시방편적 퇴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당초 대한항공은 ‘오너 3세 슈퍼 갑질’의 사회적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주요 외신들까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등 국제적 이슈로 떠올랐는데도 조 부사장을 옹호하고 모든 책임을 승무원에게 전가하는 어처구니없는 작태를 연출했다. 특히 조 부사장에 의해 비행기에서 쫓겨난 승무원 사무장을 향해서는 “매뉴얼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변명과 거짓으로 둘러댔다” 운운하며 ‘오너 일족’을 보호한답시고 승무원을 인간 이하로 깔아뭉갰다. 이런 상식 이하의 행태가 더욱 강력한 비난 여론을 낳고, 시민단체가 조 부사장을 검찰에 고발하는 상황에까지 이르자 어쩔 수 없이 백기를 든 것 같다.

이번 사태는 한국적 재벌 문화의 폐해를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총수의 혈육이라는 이유로 경영능력은 물론 최소한의 상식조차 갖추지 못한 채 항공사의 주요 정책을 쥐락펴락하며 전횡을 일삼는 천민자본주의적 습성이 대중 앞에 낱낱이 폭로된 것이다. 어디 한진그룹뿐이겠는가. ‘땅콩 회항’ 같은 수많은 부조리 사례들이 그동안에도 무수히 저질러졌거나 저질러지고 있을 것이다.

조현아 부사장을 고발하는 문구가 담긴 팻말을 들고 서 있는 한 참여연대 (출처 : 경향DB)


대한항공은 이번 일을 그동안 켜켜이 쌓인 적폐를 일소하고 새로운 조직문화를 뿌리내릴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오너 임원’이 항공운항의 법규와 원칙 따위는 헌신짝처럼 무시하며 이미 출발한 항공기를 제 집 자가용쯤으로 여기고, 기장은 임원의 위세에 눌려 울며 겨자 먹기로 불합리한 지시를 따르는 항공사의 비행기를 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국 가디언은 “(북한의) 고려항공이 대한항공보다 낫다”는 트위터 게시물을 인용해 비꼬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조 부사장이 물러났다고 이미 발생한 사건이 없던 것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항공업무를 관리·감독하는 국토교통부가 이미 진상조사에 착수했고, 검찰 수사도 시작될 것이다. 법과 원칙에 따른 당국의 엄정한 조치가 오너 말 한마디면 떠난 비행기도 되돌아오는 ‘항공 후진국’의 불명예를 씻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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