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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지침’이 신호였나 보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는 박 대통령의 언명이 나오자 당정과 장외의 극우 세력이 총궐기하는 양상이다. 새누리당은 ‘헌재 결정’ 비판에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으스스한 죄목을 들이대고, 야당을 향해선 “대선 불복보다 심각한 헌법 불복”이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여당은 헌재 결정 규탄집회에 강경 대응을 주문하고, 검경은 엄단을 복창하고 있다. 헌재 결정에 대한 반대집회마저 처벌하겠다니 유신시대의 긴급조치를 방불케 한다. 보수단체들이 10만여명에 달하는 통합진보당 당원 전체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자,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수사에 착수했다. 때맞춰 종편을 필두로 한 일부 보수언론은 ‘헌재 결정 반대=종북=진보’의 틀을 꿰맞추려 안간힘이다. 다원성과 소수자 관용이란 민주적 근본가치를 훼손한 헌재의 결정이 내려졌을 때 이미 예견된 종북몰이 ‘이념전쟁’이 현실화한 것이다.

헌재 스스로도 정치적인 정당 해산 결정이 가져올 후폭풍을 짐작한 듯 결정문에서 “일반 당원들 및 경우에 따라 피청구인(진보당)과 우호적 관계를 맺기도 했던 다른 정당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이념공세는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밝혔다. 애초 실현 불가능한 주문이다. 헌재가 정치적 소수파를 그 일부의 과오만을 이유로 공존하지 못할 반체제세력으로 규정해 강제 추방한 것 자체가 ‘종북 논쟁’과 무차별적 색깔론이 판칠 공간을 마련한 것이기 때문이다. 헌재의 정당 해산 결정은 거듭 강조했듯이 국민주권, 기본적 인권, 복수정당제도 등 민주체제의 중요 요소를 송두리째 외면한 것이다. 헌재의 결정을 문제 삼는 건 그 자체가 수십년 동안 피와 땀으로 일궈온 민주주의를 나락으로 빠뜨렸기 때문이다. 헌재가 정당 해산의 근거로 삼은 ‘이석기 세력’보다, 국민주권과 정당의 자유를 침해한 헌재의 정당 해산 결정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더 위협이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대표가 24일 서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 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보복의 끝은 어디인가. 한국사회를 해방 직후 국가보안법의 공포 시대로 되돌리려는 것인가"라 묻고 "저는 패배한 사람으로서 어떤 책임도 감내하겠지만, 한국사회를 공안광풍에 몰아넣고 당원들을 겁박하지 말라"고 말했다. (출처 : 경향DB)


헌재의 결정을 정당화하게 되면 한국 사회는 돌이킬 수 없는 민주주의 암흑기로 내달을 수 있다. 주류 기득권 세력과 견해가 다른 소수파에 대한 공안탄압이 상시화되고, “사회적 낙인과 이념공세”로 끝없이 진보세력을 옥죄어 ‘사상의 동토(冬土)’가 초래될 수 있다. 여기서 침묵하고 방관하게 되면 그러한 공안탄압과 이념전쟁의 공범이 될 수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린 헌재 결정에 대한 최종적 검증과 심판은 정권의 가이드라인이나 강압적 공안몰이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이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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