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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다 가고 있다. 일 년 전, 2013년을 돌아보며 정치학자로서 박근혜 정부의 원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화장발’이라고 쓴 바 있다. 즉 경제민주화로 상징되는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박 대통령의 개혁적 보수주의자의 모습은 화장발에 불과하고 화장을 지운 박 대통령의 ‘생얼’은 너무도 퇴행적이었다.

다시 일 년이 지나,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자니 지나온 나날이 아득하기만 하다. 그 어느 것보다도 아득하고 가슴에 저며오는 것은 비극적인 세월호 참사다. 꽃 같은 어린 생명들을 수백명이나 잃은 이 비극은 인간의 생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윤만 추구하는 왜곡된 가치관으로부터 무사안일과 유착에 의해 무능하기 짝이 없는 국가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는 불행히도 변한 것이 없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통령의 불통과 야당의 무능이 자리 잡고 있다. 박 대통령의 불통은 그 무엇보다도 연이은 인사 실패로 박 대통령이 약속한 국민행복시대가 아니라 국민절망시대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불통은 최근 다시 한번 국민을 절망시키고 있는 정윤회 파동으로 절정에 이르고 있다.

이에 못지않게 책임이 있는 것은 제1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다. 집권세력의 무능을 만천하에 드러낸 세월호 사태에도 불구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은 한심한 계파정치와 이에 기초한 정파적 공천 등으로 압승해야 당연했을 6·4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질 수 없는 7·30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특히 그 중심에는 낡은 정치에 대한 대안으로 주목을 받았던 안철수 의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명분(기초의원 정당공천 폐지)으로 민주당과 통합해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들었지만 당을 혁신하기는커녕 낡은 계파정치를 재현해 스스로 괴멸하고 말았다. 그 결과 당을 혁신시킬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카드가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이후 박영선 체제가 들어섰지만 세월호 관련법에 대한 새누리당과의 일방적인 합의 등으로 또다시 좌초하고 결국 비대위 체제가 들어섰다. 그러나 당 혁신의 마지막 기회라고 할 수 있는 비대위는 당의 혁신을 위한 비대위가 아니라 그동안 당을 망쳐온 주역들의 모임인 대주주연합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 중 대주주인 문재인 의원, 박지원 의원, 정세균 의원이 당 대표 출마와 관련해 비대위 위원을 사퇴했지만 그동안 비대위가 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즉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비대위가 한 당의 혁신은 아무것도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사실상 수권정당으로서 수명을 다한 지 이미 오래고 혁신을 통해 수권정당으로 발돋움하기를 포기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첩첩국회’ 연말 임시국회를 하루 앞둔 14일 국회 정문 바리케이드 뒤로 멀리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출처 : 경향DB)


연말을 장식하고 있는 정윤회 파동, 땅콩 회항 사건,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의 대한항공 청탁 사건,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라는 네 가지 사건은 너무도 상징적이다. 정윤회 파동이 박 대통령의 불통정치와 환관정치를 상징한다면, 땅콩 회항 사건은 한국 재벌들의 천민성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의 대한항공 청탁 사건은 소위 ‘민주야당’의 도덕적 수준과 숨겨진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자신 역시 딸 청탁 문제가 걸려 있어 이를 문제 삼지 말라고 했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마지막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조종을 의미하는 진보당 해산 선고는 우리 사법부, 나아가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8 대 1의 판결이라니 할 말이 없다. 이 네 사건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절망하고, 절망하고, 절망하고, 또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정작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새해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윤회 파동에 대한 대응을 볼 때 박 대통령의 불통정치가 바뀔 것 같지 않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더더욱 문제다. 혁신은커녕 2월 전당대회를 계기로 수권정당 최종 사망선고를 받을 것이 뻔하다. 흐르는 세월을 잡아둘 수 없지만, 나는 새해가 오는 것이 두렵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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