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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이념과 제도는 자유로운 정치적 결사를 전제로 한다. 일정한 정치적 견해로 뭉친 정당들 간의 자유로운 경쟁 없이는 현대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당을 정치 외부의 힘으로 경쟁의 장에서 배제하는 것은 ‘자유롭게 선택하는 시민’이라는 민주주의 전제를 부정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어느 정당이 선호되지 않는다면 그건 시민의 선택에 의해 가려져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 원리에 타당하다. 정통성 있는 심판자는 오직 시민뿐이다.

한국 사회에는 언젠가부터 주체사상파(약칭 주사파) 혹은 넓은 의미의 자주파라는 특정한 이념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존재해왔고 그들의 참여로 정당도 탄생했다. 이 정당은 나름의 이념과 정강 정책을 제시하며 시민들의 지지를 모으기 위해 노력했다. 시민들의 욕구와 시대정신에 가까운 이념과 정책을 제시할 때는 지지를 늘렸고, 그렇지 못하고 북한을 맹목적으로 추종한다는 의심을 받을 때는 지지를 잃었다.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 폭력 사건 때, 이석기 사건 때, 진보당 지도부가 이 사건을 옹호할 때 시민은 지지를 철회했고 그 때문에 진보당은 신뢰를 잃고 생존의 기로에 서야 했다. 시민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고 인식한 대로 정치적 선택을 한 결과이다. 만일 진보당의 이런 행태에도 진보당이 성장했다면 정치의 오작동을 의심할 수 있지만, 진보당은 쇠퇴하고 몰락하는 중이었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걸 뜻한다.

그런데도 헌법재판소가 정치의 핵심적 과정에 직접 개입했다. 근거도 충분히 제시하지 못한 채 정치적 판단에 따라 당의 해산과 선거로 선출된 의원직 박탈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만일 헌재가 정치적 판단을 원했다면 판단하는 주체 역시 이 사회의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헌재가 다룬 민주주의, 민주적 기본 질서, 정당이라는 개념들만 보더라도 정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재판관은 모두 판사·검사 출신으로 제한된 직업적 경력을 가진 이들이다. 그들 다수의 이념 성향 역시 보수적이다.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다. 헌재가 만장일치에 가까운 결정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비유와 문학적 표현으로 점철되어 있는 안창호·조용호 재판관의 보충의견은 법률적 판단이라기보다 정치인의 성명서에 더 가깝다. ‘대역(大逆)행위’ ‘불사(不赦·절대 용납할 수 없음)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기회주의 지식인·언론인, 사이비 진보주의자, 인기 영합 정치인’이란 표현에는 이념적, 정치적 편향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건 법의 논리가 아니다.

이런 헌재 결정은 권위를 가질 수 없다. 헌재 결정을 두고 설득력 있는 반대와 비판이 맞선다면 그건 이미 권위가 훼손됐다는 걸 뜻한다. 물론 헌재는 이념 갈등의 종식을 희망했다. “일반 당원들 및 경우에 따라 피청구인(진보당)과 우호적 관계를 맺기도 했던 다른 정당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이념공세는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견해가 다른 이를 ‘종북’으로 낙인찍는 이념 전쟁과 종북몰이, 헌재 결정 이후 어떻게 대처할지를 놓고 첨예하게 대결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한 재미교포의 방북 경험을 들려주는 토크쇼를 ‘종북 콘서트’로 규정한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에도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며 적극 뒷받침했다. 황교안 법무장관은 “헌법의 적”이라며 대결적 태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집권당은 국면전환용으로 활용할 태세이다. 보수단체는 진보당원 전체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마치 전투 채비를 하는 전사와 같은 전의가 느껴진다. 이들이 공안정국을 조성하는 순간 이 사회 전체는 이념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질 것이다.

헌재 우회전 ‘빨간불’ 21일 헌법재판소 인근 서울 종로구 재동로터리에 헌재를 가리키는 표지판과 함께 붉은색 신호등이 켜져 있다. (출처 : 경향DB)


이들은 우리 내부의 평화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지 모른다. 대북 강경책으로 일관하는 정부, 북한 주장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하나의 이념을 제거한 헌재와 이에 동조하는 정권, 종북몰이에 빠진 보수들이 통일의 한 주체인 북한과 평화적 통일을 추구한다는 주장은 너무나 어색해 보인다. 한국 사회가 이렇게 된 것은 바로 정치의 무능 때문이기도 하다. 정치권은 정치적 갈등을 대화와 토론을 통해 조정하거나 이견을 상호 설득의 과정을 통해 좁히는 대신 사법부에 떠넘겨왔다. 이 정치 실패가 사법부에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부여한 것이다.

민주화 이후 다양한 사상과 이념을 관용하는 자유주의의 확산에 자부심을 느낀 시민들은 이제 사상·이념의 축소라는 퇴행적 현상을 지켜보게 되었다. 소수의 사상·이념을 물리적으로 제거하지 않고도, 그걸 지하세계에 가둬놓지 않고도 공론의 장에서 소화함으로써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진보적 민주주의’ ‘민중 주권’은 민주화 과정에서 형성된 담론의 일부였다. 이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는 통찰력을 제공하기도 했고 보수 정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은 비유어법이기도 했던 이런 말과 생각을 단지 의심만으로 제거한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좁히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리 사회의 내부는 다시 분단될 것이다. 이성적 사고의 절단을 보게 될 것이며, 불구의 사회로 되돌아가는 우울한 풍경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헌재는 한국 사회의 문제 하나를 제거한 것이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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