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감사원이 그제 55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경영관리 감사 결과를 내놨다. 해외 부실사업으로 10조원의 혈세를 낭비한 것도 모자라 방만경영으로 인한 손실을 공공요금에 전가시켜온 것으로 드러났다. 빚더미 탓에 돈 벌어 이자 갚기도 벅찬 상황에서 이면합의를 통해 챙길 것은 다 챙겼다. 이런 부실경영으로 인해 낭비되거나 손실이 우려되는 돈만 12조원에 달한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철밥통’ ‘신의 직장’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얘기가 아니다.

이번에 드러난 공기업의 모럴해저드는 일반의 상상을 웃돈다. 가스공사는 요금을 산정하면서 내부적으로 쓴 장학·기부금도 비용에 얹어 소비자들에게 떠넘겼다. 국민들이 내지 않아도 될 4200억원을 부담한 셈이다. 산업기술진흥원은 직원들의 승진 시기를 소급 적용하는 편법으로 인건비를 과다 지급했다가 적발됐다. 예산이 남자 직원들에게 상품권이나 가전제품을 나눠준 것은 그나마 양반일 정도다. 협력업체 돈을 받아 단체로 해외·골프여행을 다녀온 공기업 직원도 있다. 신입·인턴사원 채용 과정에 특정인을 합격시키기 위해 채용요건이나 점수를 조작한 사례도 다수 적발돼 공기업의 공(公)자가 무색할 지경이다.

한국조폐공사 임직원들이 사옥 앞에서 ‘2013년 공기업 경영 평가 1위’를 달성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 : 경향DB)


어제 국정감사에서도 공기업의 고질병이 도마에 올랐다. 행정연구원장은 연구비를 전용해 명품 넥타이와 이른바 ‘고소영 향수’(아닉구딸)를 구입한 사실이 들통나 혼쭐이 났다. 국책연구원장에 걸맞지 않게 선식과 방울토마토까지 법인카드로 구입했다니 나랏돈을 쌈짓돈 쓰듯 한 꼴이다. 기관장의 몰염치한 보수체계는 더 가관이다. 경영평가에서 하위 등급을 받은 가스·지역난방공사 사장이 12억원 이상씩을 받아 고액연봉자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직원들에게는 구조조정을 강요하면서 자기 잇속만 차린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공기업 부채는 이미 500조원을 넘어 국가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허리띠를 졸라매기는커녕 나랏돈을 물 쓰듯 하는 행태는 범죄행위나 다름없다. 감사원이 이번에 문제가 된 16명을 검찰에 고발한 만큼 철저한 수사를 통해 엄정한 사후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공기업의 방만경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보은성 낙하산 인사로 공기업을 흔든 게 누구인가. 잘못된 인사 관행을 바로잡고 경영실적에 따라 기관장의 책임을 묻는 제대로 된 공기업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해묵은 적폐를 해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