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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사(한적)가 지난 27일 창립 109주년을 맞았다. 그런데 생일을 맞은 한적 구성원들은 기쁜 마음으로 앞날의 비전을 설계하기보다는 오히려 “창립 이래 최대 위기에 빠졌다”며 참담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바로 김성주 총재 때문이다.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낸 경력을 바탕으로 한적 총재가 됨으로써 ‘보은·낙하산 인사’ 논란을 낳았던 그는 취임 이후에도 갖가지 부적절한 언행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다. ‘남북분단은 하나님의 뜻’과 같은 망언과, 국정감사 출석을 거부하고 외국 출장을 떠나버린 이른바 ‘국감 뺑소니’ 등이 대표적 사례라고 하겠다.

‘걸어다니는 뉴스제조기’인 김 총재가 또다시 진귀한 뉴스거리를 제공했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성주그룹의 직원을 총재 비서실에 상주시켜 한적 간부회의에 참석하도록 하는가 하면 성주그룹의 감사로 하여금 직원 인사자료, 적십자회비 모금 현황, 혈액사업 자료 등 민감한 한적 내부 자료를 광범위하게 열람케 하고 있다는 소식이 바로 그것이다. 외부인이 한적과 같은 공공기관에서 자료를 제출받기 위해서는 정보공개요청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국회나 정부 유관부처들도 관련법의 법적 근거에 따라 자료를 제출받고 있다. 따라서 성주그룹 감사의 한적 내부 자료 무단 열람은 명백한 위법행위인 것이다.

대한적십자사 김성주 총재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 불출석 문제로 논란이 생긴 데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우리는 이러한 행태가 대한적십자사라는 공공구호기관을 자신의 사적 소유물쯤으로 여기는 김 총재의 뒤틀린 사고방식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비유를 하자면 기업인 출신 인사가 대통령이 된 다음 자신이 데리고 있던 비서들을 국무회의나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 참석시켜 국정을 농단하는 셈이다. “일손이 부족해서 그랬다”는 김 총재의 해명은 더욱 놀랍다. 이 답변에는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데 대한 죄송함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오만한 발상만이 읽힐 뿐이다.

한적 노조는 “김 총재의 돌출행동과 사조직 개입으로 적십자사 전체가 큰 타격을 입었으며 창립 이래 최대 위기에 빠졌다”며 그에게 대국민사과와 즉각 사퇴를 촉구했다. 우리 역시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공공구호기관이자 대북인도사업기관인 한적의 위상이 김 총재 한 사람의 허물 때문에 끝없이 추락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김 총재가 한적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자 한다면 당장 물러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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