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며칠 전 필자는 집안 행사 관계로 가족, 지인들과 노래방에 갔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노래방 요금을 안 내고 뒷문으로 도망가려던 10대 남학생들이 주인에게 붙잡힌 것이다. 노래방 구석 한쪽에 비상구가 있었는데, 그곳을 통해 도망갈 요량이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문이 잠겨 있어 이들의 작전은 실패에 그쳤다.

아찔했다. 지난 1999년 10월 인천 호프집 화재 사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고 당시 2층 호프집에서는 학교 축제 후 동아리 모임과 생일파티 등으로 중·고등학생이 120여명 있었다. 지하에서 발생한 화재는 삽시간에 계단을 통해 2층으로 번졌다. 긴박한 상황이었으나, 호프집 사장이 술값을 받으려고 학생들을 못 나가게 하는 바람에 사망 57명, 부상 80명이라는 대형 참사로 이어진 것이다.

지난 8월 우리나라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추기경 시절 겪은 참사를 상기하였다. 2004년 12월30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발생한 불은 유독가스로 순식간에 클럽 전체를 뒤덮어, 195명의 사망과 700명 넘는 부상자 등 대형 인명피해를 발생시켰다. 당시 나이트클럽은 술값을 내지 않고 도망치는 사람이 있을까 봐 피난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할 비상구를 대부분 잠가놓은 상태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인천 호프집 화재와 본질에서 너무나 유사하다.

세계적으로 다중이용업소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한 사고로 232명이 숨진 2013년 브라질 나이트클럽 화재, 152명이 희생된 2009년 러시아 나이트클럽 화재사고가 있다. 다중이용업소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한 대규모 인명피해는 거의 대부분 영업주와 종업원의 안전의식 부족 그리고 초기 대응 미흡에 핵심적인 원인이 있다.

불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재들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출처 : 경향DB)


노래방, 호프집, 나이트클럽 등 다중이용업소의 이용자는 음주, 흡연, 가무 등과 연계되어 화재발생 시에 적합한 대피활동을 할 수 있는 판단력이 떨어져서 작은 규모의 화재에도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다. 다중이용업소에서 발생하는 대형화재는 대부분 사소한 부주의에서 시작되고, 무사안일의 안전불감증으로 증폭된다. 일상의 업무에서 벗어나서 휴식을 위하여 다중이용업소를 찾는 이용자에게까지 화재안전에 긴장하도록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다중이용업소의 영업특성상 영업주와 종업원은 다른 사업장보다 화재안전에 대한 의식과 화재발생 시에 고객을 안전하게 대피하는 기술과 방법을 충분하게 습득하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한 유일한 방안은 다중이용업소 영업주와 종업원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에서 찾아야 한다.

그럼에도 다중이용업소의 영업주와 종업원에 대한 교육은 고작 영업 전 소방서에서 실시하는 2시간 정도의 교육이 전부다. 다중이용업을 하기 전에 2시간 교육으로 고객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어느 누구도 기대할 수 없다. 다중이용업소의 고객을 안전하게 대피하도록 유도하는 기술과 방법에 대한 충분한 교육과 훈련 없이 영업주와 종업원이 화재발생 시에 절실하게 필요한 활동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다. 안전은 공짜로 얻어지지 않는다. 다중이용업소의 안전은 영업주의 안전의식제고, 교육과 훈련을 통하여 보장될 뿐이다. 다중이용업소의 영업주와 종업원에 대한 안전교육과 훈련은 규제라는 족쇄에 묶여 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필자가 가본 노래방은 화재대피에 무방비였고, 예전의 여느 노래방과 똑같았다.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인 관행인 안전불감증을 청산하지 않는 한 다중이용업소에서 꿈틀대는 화마를 비켜갈 수 없음은 자명하다. 이에 정부는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기 위해 안전과 관련된 제도적 장치를 제대로 마련했는지 새삼 되돌아볼 일이다.


이종영 |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