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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전자제품 제조회사인 세일전자 공장에서 지난 21일 오후 불이 나 노동자 9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 화재 당시 현장에는 소화기 26개, 실내 소화전 4개, 비상구 2개, 완강기 4개 등이 설치돼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방화 시설을 갖춘 곳에 화재 발생 4분 만에 소방대가 도착했는데도 많은 희생자가 난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우선 화재 발생 직후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회사 측은 현장에 스프링클러 32개가 설치돼 있었고 지난 6월 말 소방 점검 결과에서도 지적 사항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스프링클러에 대해서는 감식이 진행되고 있다며 정상 작동했는지 여부를 자신하지 못했다. 150여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현장에서 화재 초기 진압에 가장 중요한 시설이 작동되지 않았다면 심각한 문제다. 인화성이 강한 단열재와 제품 포장용 상자가 현장에 쌓여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런 의심이 사실이라면 이번 화재도 인재(人災)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21일 오후 인천 남동구 논현동 남동공단에 있는 전자제품 제조공장에서 불이 나 소방대원들이 화재 진압과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이번 화재에서 주목할 대목이 있다. 사망자 9명 가운데 4명이 세일전자 협력업체 직원이었으며 1명은 세일전자 소속 비정규직원으로 확인됐다는 점이다. 사망자의 반 이상이 현장 노동자 중에서도 회사의 보호를 상대적으로 덜 받는 사람들이다. 특히 이번 화재 현장에 휴대전화 부품 등을 세척할 때 사용하는 시너가 있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전자회로기판을 시너로 닦으면 새것처럼 깨끗하게 보여서 썼다는 유족의 증언이 있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화재에 취약한 물질을 썼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이 회사 대표는 “우리 공장은 시너나 인화성 물질을 쓰지 않고 외주업체는 일부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협력업체에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가 아닌지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 제천과 밀양 화재참사 후 방재시설을 대대적으로 점검했지만 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번 화재가 난 건물처럼 수많은 공장이 샌드위치 패널 구조에 가연성 위험물질을 취급하고 있다. 소방당국은 이번 일을 계기로 공단의 화재방지 시스템을 중점 점검할 필요가 있다. 회사 규모가 작을수록 비용 절감에 매달리게 된다. 그러나 비용을 아끼려다 대형참사가 발생하면 더 큰돈이 든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격이다. 방재에 대한 기업의 각성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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