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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의 통한을 역사로 증언하는 흑백의 사진이 있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된 1985년 9월 ‘남북한고향방문단’ 행사 때다. 마지막 상봉을 마치고 다시 헤어져야 하는 순간, 버스 차창을 사이에 두고 손바닥을 마주한 남북 형제의 절절한 모습이 반도를 울렸다. 당시 언론들은 이 장면에 ‘언제 다시 만나나 … 차라리 만나지 말 것을’이라고 가없는 회한을 전했다. 그랬다. 30여년 전이니 ‘직계’ 상봉이 대부분이었던 이산가족들은 너무도 짧은 만남 뒤에 또다시 생이별을 해야 하는 무참한 현실 앞에 무너졌다. “아바지, 아바지, 또 만날 수 있게 오래 사시라요”라는 속절없는 인사만 가득했다. 팔순의 어머니는 북으로 돌아가는 아들에게 “이 세상에서는 만나기 힘들 것이니 하늘에서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자”라는 손편지를 꼭 쥐여 줬다. 그 어머니와 아들은 하늘에서라도 다시 만났을까.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1회차 마지막날인 22일 금강산호텔에서 작별상봉을 마친 뒤 버스에 탑승한 남측 한신자씨(99·왼쪽)가 차창을 사이에 두고 북측의 딸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다. 금강산 _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그리고 30여년이 흘렀다. 남북관계의 부침에 따라 간헐적으로 이뤄진 ‘상봉 행사’ 때면, 어렵게 상봉한 이산가족들은 또 다른 고통을 안아야 했다. 서신 교환도, 재상봉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 짧은 만남의 기억을 부둥켜안고 살아가야 하는 아픔이다. 차라리 만나지 말고 그리움 속에 살 걸, 하고 후회하는 이산가족들이 많다고 한다. 2014년 상봉 행사 때, 북의 아들·딸을 만난 남의 아버지는 상봉 40여일 만에 건강악화로 숨지기도 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8월21일 (출처:경향신문DB)

3년 만에 성사된 이산 상봉, 금강산에서 북의 혈육을 만나 꿈만 같던 시간을 보낸 남측의 이산가족들은 22일 어김없이 ‘작별상봉’ 절차를 밟았다. 작별상봉장은 예의 “오래 살아 다시 만나자”는 허허한 다짐과 안타까운 눈물로 먹먹했다. 65년의 기다림 끝에 겨우 12시간의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기약없는 헤어짐을 위한 ‘작별상봉’, 너무도 잔인하다.

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비극”(미국 CNN)을 끊기 위해 이제는 근본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당장 전면적 생사확인을 하고 서신이나 전화, 화상으로 연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설면회소 설치와 상봉 정례화가 절실하다. 이번에도 남의 어머니와 북의 딸은 버스 차창을 사이에 두고 손을 비비며 애타게 울부짖었다. 천륜을 저버리는 이 잔인한 광경을 언제까지 두고 볼 텐가.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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