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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찰청이 노동쟁의나 집회·시위로 형사처벌받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유전정보가 담긴 DNA를 채취하도록 일선 검찰에 지시했다고 한다.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DNA법)’에 합헌 결정을 내린 만큼, 그동안 보류해오던 채취를 재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 적용 대상을 무차별적으로 확대함으로써 입법 취지를 훼손하고 인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DNA법은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과 살인·강도·강간 등 강력범죄의 재발을 방지하고 상습적 흉악범죄자를 신속히 검거하기 위해 제정됐다. 노동쟁의나 집회·시위 관련자들까지 DNA를 채취하는 것은 이들을 흉악범죄자와 동일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검찰은 몇 해 전에도 쌍용자동차 파업 노동자와 용산참사 철거민을 대상으로 DNA를 채취해 사회적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일련의 행태는 입법 취지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 시민의 법감정과도 유리된 처사다.

“노동사범이 흉악범죄자인가” 민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011년에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DNA 채취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출처 : 경향DB)


또한 DNA법의 해당 조항을 보면, 11개 대상 범죄자에 대해 DNA시료를 ‘채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채취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아닌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범죄 예방의 순기능을 수행하되 인권침해라는 역기능을 최소화하기 위해 극히 제한적으로 적용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검찰은 범죄의 경중이나 재발 가능성을 세밀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법을 적용하고 있다. 일례로 한 노동자가 노사분쟁 과정에서 점거농성을 했다가 2010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는데, 지난달에 DNA 채취를 위한 출석요구서를 받았다고 한다. 강력범죄자도 아니고, 4년여 전 사법절차가 마무리된 사람까지 시료 채취 대상으로 삼는 것은 누가 봐도 지나치지 않은가.

DNA는 개인의 인격권과 직결되는, 민감도가 가장 높은 정보에 속한다. 이를 채취·수집·보관하는 일은 인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라는 테두리 안에서 엄격하게 행해져야 한다. 범죄 예방과 수사 효율도 물론 중요하지만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이란 가치를 넘어설 수는 없다. 국회는 DNA법을 조속히 개정해 적용 대상 범죄의 범위를 축소하고, 채취 영장 심리절차도 강화해야 한다. 법 개정 전이라도 노동쟁의나 집회·시위 관련 사범에 대한 DNA 채취는 중단해야 마땅하다. 검찰이 지난해까지 축적한 DNA시료가 8만여건에 이른다는데, 이 가운데 얼마만큼이나 수사에 활용되는지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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