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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만 전 총무비서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국가정보원에서 40억여원을 상납받았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충격적이다. 국정원 돈의 최종 귀착지가 박 전 대통령이라는 의미이다. 도대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의 끝이 어딘지 가늠조차 어렵다. 40억원 중 일부라도 박 전 대통령이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면 이는 국민 세금을 유용한 중대 범죄다. 국정원은 2일 국회 정보위 국정감사에서 청와대에 상납한 돈이 특수공작사업비에서 빠져나갔다고 설명했다.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국정감사에서 서훈 원장(오른쪽) 등 참석자들이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검찰은 이 전 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이 국정원 자금을 매월 1000만원 넘게 받아 챙긴 사실도 적발했다. 공교롭게도 이 전 비서관과 안봉근 전 비서관은 국정원에서 정기 상납을 받던 2015년 각각 서울 강남에 아파트를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었는지 이들은 지난해 7월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관련 의혹 등이 불거지자 국정원에 상납을 중단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국정원 돈은 조윤선 전 정무수석, 현기환 전 수석,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 등에게도 매월 수백만원씩 현금으로 전달됐다. 청와대는 비공식 여론조사 등에도 국정원 돈을 끌어다 썼다. 지난해 4·13총선을 앞두고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경선 결과를 예측하기 위해 여론조사를 한 뒤 국정원에 비용 5억원을 지불하게 했다. 당시 정무수석은 한국당 김재원 의원이다.

국정원이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현금지급기 역할을 한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한국당은 정치 보복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국정원 예산의 청와대 상납은 일종의 관행이라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있었던 일이므로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역대 정부 관계자들도 모두 조사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전형적인 물귀신 작전이다. 관행이라면 왜 ‘007작전’을 펴듯 5만원짜리 현금으로 비밀리에 전달했을까. 왜 총액으로 한번에 주지 않고 매월 1억원씩 금액을 쪼개 지급했을까. 대통령 외에 일부 실세들에게 따로 준 것도 수상하다. 당시 문고리 3인방과 조 전 정무수석 등이 국정원 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국정원 수뇌부밖에 없었다고 한다. 국정원 자금의 청와대 전달이 관행이라는 주장은 이런 점에서 근거가 약하다.

국가 안전 보장을 위해 사용돼야 할 국정원 자금이 만에 하나 대통령 옷값이나 실세들의 아파트 매입에 사용됐다면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검찰은 좌고우면할 것 없다. 국정원 자금의 청와대 상납 과정을 규명하고 용처를 밝혀 관련자를 엄벌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 예산 낭비를 막고, 청와대와 국정원을 바로 세워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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