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양진호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과 숨진 송명빈 전 마커그룹 대표의 ‘도 넘은 갑질’은 우리의 기억 속에 생생하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갑질은 고 조양호 전 회장의 경영권 박탈로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시민사회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 1년간 직장 내 갑질 피해 제보를 받은 결과, 2만2810건으로 하루 평균 62건에 달했다. 직장갑질119는 ‘15대 갑질 40개 사례’를 추려 공개했는데 그 내용을 보면 기가 찬다. “실수 한 번에 손가락 하나씩을 자르겠다”, (화장실 가는 직원에게) “내가 일어서지 말랬지!”, (술 따르라는 지시를 거부한 여성 직원에게 멱살까지 잡고는) “죽고 싶냐”고 말하는 상사 등 하나같이 황당하고 비상식적인 폭언과 모욕, 폭행 사례들이다. 직장갑질119는 “정부가 약속한 직장인 관련 공약 70개가 이행됐다면 직장 내 괴롭힘은 사라졌을 것”이라며 “현실은 실제 효력이 없는 10여개만 지켜졌다”고 밝혔다. 정부는 약속한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근무시간 외 카톡 금지’ 등을 서둘러 시행해야 할 것이다.

직장갑질 관련 일러스트 (출처:경향신문DB)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등)’ 보완도 시급하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보면, 오는 7월16일부터 10인 이상 사업장은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방지책을 의무적으로 명시해야 하고, 신고를 받은 사업주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 개정안에 괴롭힘 자체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 익명 신고자에 대한 신원 보장 방안도 없다. 대표이사·사장의 갑질에 대해 감사가 이사회를 소집해 조사·징계토록 한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한 해 300만명에 이르는 자발적 퇴사자 중 적지 않은 사람이 ‘갑질’을 견디지 못해 회사를 그만두는데도 실업급여조차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정부가 내놓은 취업규칙 표준안에 최근 사회문제가 된 ‘태움 문화’나 ‘회식·장기자랑 강요’ ‘불필요한 야근 강요’ 등도 빠져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자료를 보면 직장인 10명 중 6명은 “최근 5년간 폭력이나 따돌림, 강요 등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직장 내 갑질은 ‘적폐’다. 이를 뿌리 뽑아야 할 법과 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면 바꿔야 한다. 또 노사가 협의를 통해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직장 내 괴롭힘’을 명문화하고 강행토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가 온전히 보장돼야 한다. 국제노동기구(ILO) 4개 핵심협약 비준이나 10%대에 불과한 노조가입률 제고 등 노동자 권리도 바로 세워야 한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