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검찰이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명예훼손 혐의를 수사하면서 최근 국내 인터넷언론 기자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른바 ‘사라진 7시간’ 의혹을 보도한 산케이신문 기사를 번역한 뒤 인터넷에 올린 혐의다. 외신을 번역·유포했다는 이유로 수사 대상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전례 없는 일이다. 더구나 압수수색을 당한 전모 기자는 기사를 번역한 당사자도 아니다. 검찰이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는 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번 사건의 수사 대상은 보수단체가 고발한 산케이신문 지국장과 이를 번역해 올린 뉴스프로 민모 기자다. 민 기자는 실존인물인지조차 아직 파악 안된 상태다. 검찰은 인터넷주소(IP) 추적 과정에 전 기자의 자택에서 해당 글이 처음 게재된 사실을 파악했다고 한다. 이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법원의 영장을 받아 그의 컴퓨터를 압수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수사 대상자의 신원 파악을 위해 제3자에게 강제 수사권을 동원한 것 자체가 석연치 않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4년 9월 22일 (출처 : 경향DB)


검찰 수사가 어디로 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단순히 외신 기사를 번역해 올린 게 명예훼손이라면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외신 보도는 비단 인터넷언론뿐 아니라 국내 모든 언론사들이 매일같이 다루는 내용이다.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 내용을 통제하는 것은 5공 시절에나 가능했던 얘기다. 산케이 보도를 처음 소개한 조갑제씨는 놔둔 채 특정 언론만 문제 삼는 것도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이번에 문제가 된 곳은 진보성향의 시민단체가 만든 인터넷언론이다. 행여 이번 기회에 눈엣가시 같은 진보언론을 겁박해 재갈을 물리겠다는 뜻이라면 더욱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사건은 표현의 자유와 직결된 사안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언론도 검찰 수사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명예훼손은 설사 보도 내용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믿을 만한 근거가 있거나 고의성이 없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본질인 산케이신문 보도는 차치하고라도 외신 보도 번역까지 문제 삼는 것은 검찰의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검찰이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행위를 대대적으로 단속하면서 사전검열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터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호들갑을 떨 일도 아니다. 대통령을 의식한 기소권 남용은 두고두고 검찰 조직에 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