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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지방선거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대거 당선됐을 때 자율형사립고는 곧 폐지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됐다. 자사고 폐지는 새 교육감들의 대표적 공약이었다. 특히 자사고가 몰려 있는 서울의 조희연 교육감은 취임 후 가장 먼저 할 일로 자사고 폐지를 꼽은 바 있다. 이명박 정부의 자사고 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은 교육계 공통의 인식이었다.

그런데 새 교육감들이 자사고 폐지를 추진하자 엉뚱하게도 교육부에서 막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해당사자라 할 수 있는 자사고 교직원과 학부모들은 반발할 수도 있겠지만 교육부가 이러쿵저러쿵 시비를 거는 것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사리에도 맞지 않는다.

현 제도에서 자사고 폐지 권한은 교육감에게 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91조3의 4항은 교육감이 자사고 지정 목적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인정할 경우 지정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교육부는 이 법 91조3의 5항에 “지정취소할 경우 미리 교육부 장관과 협의하여야 한다”고 한 규정을 확대 해석해 자신들이 거부권을 갖고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 ‘협의’에 관한 구체적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훈령에 교육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지정취소할 수 없게 돼 있다는 것이다.

자사고의 예전과 지금 (출처 : 경향DB)

하위법령이 상위법에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은 법의 상식이자 기본이다. 모법에 ‘협의’로 돼 있는 것을 훈령에서 사실상 ‘합의’로 둔갑시키면 법 체계는 엉망이 된다. 법률은 국회에서 의결해야 효력을 발생하지만 훈령은 정부부처에서 임의로 제정해 공표하면 그만이다. 훈령을 내세워 상위법 규정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는 법 체계를 무시하는 발상이다.

서남수 전 교육부 장관은 자사고가 일반고를 슬럼화로 몰아간 주된 요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런 정책 실패를 인정한다면 교육부는 교육감의 자사고 폐지 정책에 쓸데없이 발목 잡을 게 아니라 폐지 이후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그게 공교육 살리기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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