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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전 대한민국은 경악했다. 전시에도 있을 수 없는 어린 학생들의 집단 참사를 생중계로 지켜보았다. 세월호는 사고가 날 수밖에 없었던 온갖 물리적·제도적·구조적 요인을 이미 안고 있었다는 것을 온 국민이 지켜보았다. 배와 함께 가라앉은 304명을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할 정도로 무능한 정부를 지켜보았다. 비통하고 부끄러운 현실 앞에서 국민은 뜻을 모았다. 미안하다, 잊지 않겠다, 그리고 바꾸겠다고.

대한민국의 시간이 2014년 4월16일 이전과 이후, 즉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구분돼야 한다는 것은 국민적 합의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안의 세월호’를 직시하는 계기가 됐고, 더 이상 ‘또 다른 세월호’가 출항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주었다. 안전이나 행복보다 효율이나 이윤에 치중했던 과거에 대한 사회적 맹성의 산물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의 사과와 함께 약속한 ‘국가 개조’가 바로 그런 가치 대전환 수준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일 터이다.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는 오늘 대한민국의 시계는 어디에 있는가. 안타깝게도 4월16일에서 한 눈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참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가리는 진상규명의 시곗바늘부터 작동불능 상태이다. 정부 수립 이후 최대 체포작전이라고까지 할 정도로 검경이 심혈을 기울였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검거에 실패한 것은 기울어가는 세월호에서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해경의 모습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사고의 원인 규명 및 피해 배상 책임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인물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것만도 뼈아픈 일인데 시신을 수습해놓고도 40일 동안이나 ‘유령 검거’에 국력과 수사력을 쏟아부은 꼴이니 이보다 황당한 일이 없다.

경기 화성시 용주사에서 11일 열린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제에서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부모가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다. 엄마는 '4월16일을 기억하라'는 문구가 적힌 노란 팔찌를 차고 있다. (출처 : 경향DB)

검경 못지않게 정치권도 무능과 무책임에 관한 한 세월호급이다.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는 지지부진하다. 박 대통령과 여야 원내지도부 회동 때 합의했던 특별법 제정조차 난항을 겪고 있는 모습은 4월16일 이전의 정치권 그대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큰 피해를 주면서 사익을 추구한 기업의 문을 닫게 하고 범죄 수익을 끝까지 추적해 환수하겠다며 박 대통령이 제안한 ‘유병언법’이나 공직자 부정청탁을 금지하는 내용의 ‘김영란법’ 등 후속 입법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공공과 민간 부문에도 세월호 시계는 멈춰 있다.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도 민간잠수사와 소방관 등 7명의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서울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열차 추돌, 경기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전남 장성 요양병원 방화 사건, 태백선 열차충돌 사고 등을 비롯해 산업 현장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사고가 대부분 후진적인 인재로 판명되고 있다. 어느 때보다 안전이 강조되고 기관마다 안전점검이 이루어지는 상황인데도 사고가 나면 확인되는 것은 안전불감증이다.

4·16 이후의 새로운 대한민국을 시작하는 전환점이 돼야 할 세월호 참사 100일의 현실은 이렇듯 참담하다. 그 책임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있겠지만 대한민국호의 선장인 박 대통령이 가장 무거울 수밖에 없다. 비록 4·16 이전의 대통령과 국무총리라 하더라도 4·16 이전의 벽을 깨고 4·16 이후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정부와 정치권, 기업, 국민을 4·16 이후의 시간과 공간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 어린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우리는 여전히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 잊지 않겠다고, 변하겠다고 다시 약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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