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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결정문이 명문(名文)인 것은 그 속에 국가와 권력의 도리(道理)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공기만큼이나 당연한 것이지만 실감하지 못했고, 헌정사에서 한 번도 이런 방식으로 그 존재를 증거하지 못했던 민주국가의 원칙을 역사에 새겼다.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입니다.”

결국 모든 것은 ‘국민’이다. 고대 그리스·로마 이래로 ‘민주(民主)’라는 정체를 지향한 국가의 절대명제를 이야기한 것이다.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명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온화한 풍속’이란 두 단어로 로마의 미덕을 집약했다. 일개 도시국가를 세계사 유례가 없는 대제국으로 만든 힘의 원천을 압축한 것이다. 이는 최고 권력자뿐 아니라 민중들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법과 문화를 기반으로 한 포용력 있는 권력일 때 로마의 치세는 눈부셨다. 반면 포악한 황제를 지날 때마다 민심도 거칠어졌다.

실상 그 책 속엔 탄핵당한 박근혜도 있고, 최순실도 있으며, 트럼프까지도 보였다. 로마의 협소한 궁정에 콕 박혀 향락과 살육에 몰두한 황제 콤모두스는 출근조차 띄엄띄엄한 무능한 대통령을 떠올리게 했고, 콤모두스 옆에서 모략하고 치부한 근위대장 클리안데르는 로마판 최순실이었다. 근위대 병영 앞에서 황제 자리를 흥정한 거부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는 그 시대 트럼프일지 모른다.

콤모두스의 잔혹한 13년 행각은 그가 칼날에 절명하고서야 멈춰섰지만, 21세기 한국사회 국정농단은 탄핵이라는 제도적 장치 속에 민심의 힘으로 멈춰세웠다. ‘피’는 일절 흘리지 않았다. 현대 문명과 민주주의 제도의 눈부신 성취다. 그 점에서 탄핵은 사나운 권력으로부터 국가·사회를 보호하고 지속시키기 위한 마지막 비상구와도 같다.

이제 우리 사회는 ‘탄핵 그 이후’라는 과제 앞에 서 있다. 새로운 국가와 권력 건설이라는 중무장한 과제다. 어쩌면 그것은 벼랑 끝일 수도, 미래 희망을 예감하는 폐허의 위일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금 민심이 ‘온후함’ 속에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권력의 패악에 민심은 더없이 거칠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역·세대로 갈린 채 적의로 공전하며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전국이 화약고 같은 아슬아슬함은 그 때문이다. 모욕당한 정의를 바로 세우고 망가진 국가 기둥들을 복원할 ‘적폐청산’의 당연한 길 앞에 ‘통합’이란 힘겨운 과제가 함께 다가오는 이유다.

결국 ‘사람’이다. 민심이 현명하고 온후한 지도자를 만든다. 탄핵으로 민주주의의 새로운 막을 연 한국사회가 제2막으로 나아가기 위한 좌표는 60일 뒤 우리 사회의 선택에 있다. 눈 밝은 시민들이 봐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선 여론에 아부하지 않는 이여야 한다. 여론에 아부하는 권력자는 언제든 민심을 배반할 준비가 된 영악한 정치꾼일 뿐이다. 여론을 무시하는 권력자만큼이나 위험하다. 여론을 존중하되 자신의 가치를 이야기할 수 있는 ‘마음의 뼈’가 있는 이여야 한다.

눈이 밝은 사람이어야 한다. 자신 주위의 어둠을 볼 줄 아는 밝은 눈을 가진 이여야 한다. 대계를 망치는 것은 주변의 간교한 한두 가지 악함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국정농단에서, 유사 이래 수많은 간신과 혼군(昏君)의 실패에서 익히 본 것이다.

또한 성실하고 품이 넓은 사람이어야 한다. ‘서두르지 말고, 쉬지 말라’는 괴테의 충고처럼 인생 만큼 험하고 긴 국정의 길을 쉬지 않고, 그러나 서두르지 않고 이해와 설득 속에 전진할 수 있는 인내와 끈기를 가진 지도자여야 한다. 성실하지 않은 지도자는 게으름 때문에 조바심치고 욕심을 낸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의’에 대한 철학이다. 그것은 지금 리더들 앞에 놓인 적폐청산과 통합이란 충돌하는 두 과제에 대한 응답이다. 이 명제에 분명한 비전이 있을 때만 ‘통합’의 마음들은 모일 수 있다.

그 작은 실마리는 청산과 통합의 영역을 구분짓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청산은 철저히 법적 책임과 한계 속에서 명료하고 견결하게 이뤄져야 한다. 명료하지 않은 청산이 불복과 분노를 만든다. 정치적 청산은 찜찜함이 남는 무른 청산이 되거나, 때론 과도한 것이 되기 싶다. 통합은 결국 정치의 일이다.

탄핵의 겨울이 지나고, 찬란한 봄이 오고 있다. 그 봄이 지나면 다시 ‘불만의 겨울’이 올 것을 미리 염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만큼 탄핵의 겨울 동안 우리 마음들이 사납고 찬 바람에 냉각되고 지친 탓일 게다. 거칠고 결이 일어난 민심들을 어떻게 다독일 것인가. 마음의 결들에 대패질을 할 책임은 모두에게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선택’일 것이다. 과연 누가 ‘그’인가.

김광호 정치·기획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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