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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발전소 유치 문제를 놓고 강원 삼척시가 그제 실시한 주민투표에서 67.9%의 높은 투표율과 85%의 압도적인 반대율이 나왔다. 전임 시장과 정부가 원전 유치 신청과 예정구역 지정고시의 근거로 삼았던 ‘주민 96.9% 찬성’과 정반대의 결과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주민투표의 법적 효력을 부정하고 있지만 구체적 수치로 드러난 삼척시민의 뜻을 무시하기 어렵게 됐다. 주민투표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는 길을 찾는 게 현명할 것이다.

삼척 주민투표는 기대한 대로 지역민주주의의 축제 한마당을 연출했다. 정부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삼척시민 스스로 투표관리위원회를 구성해 공정하게 투·개표를 관리했고, 높은 참여와 적극적 의사 표시로 민의를 성공적으로 결집해냈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민주적 역량을 보여준 지방자치의 모범사례라고 할 만하다. 원전 유치에 대한 반대 의사를 처음으로 분명히 밝힘으로써 정부의 일방적이고 비민주적 원전 추진 방식을 거부한 점도 돋보인다. 최근 제기된 원전 유치 찬성 서명부 조작 의혹에서도 보듯 왜곡·조작된 민의를 직접 주민투표까지 성사시켜 반전시킨 것은 평가할 만하다.

삼척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관리위원회가 9일 강원 삼척체육관에서 개표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날 주민투표는 투표등록인원 4만2488명 중 2만8868명이 참여해 67.94%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_ 연합뉴스


정부는 삼척 주민투표 결과에 담긴 뜻이 이렇듯 간단치 않음을 알았으면 한다. 원전 건설은 국가사무라는 이유를 들어 주민투표의 법적 효력을 부정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다. 원전 건설은 지역주민의 삶과 안전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주민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 순리다. 방폐장 유치는 주민투표를 거치면서 그보다 훨씬 중대한 사안인 원전은 안된다는 논리는 누가 봐도 이상하다. 제도 보완이 요구되지만 그 이전에 정부가 열린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차제에 정부는 신규 원전 건설은 물론 원전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삼척 주민투표 결과는 정부의 원전정책이나 국책사업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추진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김양호 삼척시장은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원전 건설 백지화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그 대안으로 오는 2020년까지 8만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200㎿ 규모의 태양광 발전단지를 조성할 계획을 밝혔다. 세계적 ‘환경수도’가 된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선택을 연상시킨다. 정부는 삼척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일고 있는 탈원전 기류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삼척의 선택을 존중하고 원전정책, 나아가서 에너지정책을 새롭게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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