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어느 대학보다도 좋은 대학, 가고 싶은 대학이 ‘임대’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농담도 있다. 건물주가 임대한 상가건물을 손보지 않고도 단박에 월세 300만원을 1200만원으로 올려 받을 수 있다면 가히 조물주의 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현행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의하면 5년의 임대차 계약기간이 종료하면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내 건물을 내 맘대로 하겠다는 건물주를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임대료 더 못 내겠다는 임차인을 내보낼 수 있는 권리가 건물 소유주에게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사유재산권 행사와 계약자유의 원칙을 들이댄다면 할 말은 없다. 그래서 법정공방 등 몇 년째 다툼으로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서촌 궁중족발 사장은 건물주에게 둔기를 휘두르는 극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당하게 내몰림을 당할 처지에 놓인 상가임차인이 한둘이 아니어서 제2, 제3의 궁중족발 사태가 이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임차인과 건물주 간의 극단적인 임대료 갈등이 지뢰처럼 곳곳에 숨어 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원래는 낙후 지역에 외부인이 들어와 지역의 경제, 사회, 문화가 다시 활성화되는 현상을 뜻하지만 외부인이 유입되면서 본래 거주하던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과 과정을 상징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땀 흘려 일궈낸 지역 인기 상권에서 임차인이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생활터전에서 내몰림을 당하는 과정을 나타내는 단어다.

쇠퇴했던 지역의 활성화에 기여한 기존 상인들이 그 지역이 유명해지고 찾는 이가 늘어나면서 임대료가 상승하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밀려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지역공동체의 변화를 주도한 사람들이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반면 골목상권 활성화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 건물주 등 부동산 소유자들이 이익을 향유하는 불공정이다. 소유주가 그 건물과 토지의 가치상승에 기여한 바 없어도,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지 않고도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매달 들어오는 지대와 세월이 지나면서 상승하는 지대에 눈 돌리지 않을 사람은 없다. 공공이 만들어 낸 지대를 건물주가 온전히 사유화하는 구조가 젠트리피케이션을 부추긴다. 부동산 공화국의 지대추구사회가 낳은 불공정, 불평등과 양극화의 단면이다. 

부동산 가격과 지대의 상승은 토지와 건물 소유주의 노동의 산물이 아니다. 중앙과 지방정부의 정책이나 지역공동체의 노력과 임차상인의 땀이 만들어낸 결과다. 공공과 임차상인 개개인이 만들어낸 가치가 토지나 건물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 것이기 때문에 소유자에게만 그 공간에 대한 사유재산권을 제한 없이 인정할 것은 아니다. 시장의 자유와 사적 자치에 내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고도 정당화된다. 지대이익이 온전히 사유화되지 않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개발이익을 세금으로 환수해야 한다. 그래야 지속 가능한 지역공동체로 성장, 발전할 수 있다. 국민 경제생활의 안정과 임차인보호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입법 취지다. 임차인이 계약갱신을 요구할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하도록 하여 임차인을 보호하고 있지만 최초 계약 뒤 5년까지여서 그 이후 임차인의 갱신요구권은 보장되지 않는다. 5년 뒤부터는 임대료가 4배로 뛰어도 임차인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피땀 어린 생활터전을 떠나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뜨는 상권 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임대차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고 갈등을 조정하기에는 여러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에 20대 국회에 상가임차인의 부당한 내몰림을 방지하기 위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개정안’이 다수 제출되어 있다. 투자비용과 세입자의 영업으로 발생한 무형의 가치 상승분을 충분히 회수할 수 있는 기간까지 계약갱신청구권을 보장하고 임대료 상승률 규제를 강화하며 재건축이나 재개발로 재계약불가 시 영업시설물의 이전비용 보상을 의무사항으로 규정하는 보상청구권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 갈등조정기구인 상가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설치도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주택 및 상가 세입자 보호정책을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지역상권 내몰림 방지 및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 임차인 지위 강화를 위한 상가임대차 보호법 개정이 국회의 직무유기로 잠자고 있다. 이제 선거도 끝났으니 여야가 국회를 내팽개치고 정쟁을 벌일 이유도 없다. 세입자를 사지로 모는 건물주의 횡포를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된다. 세입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을 그대로 두어 임대인이 합법적으로 상가세입자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불공정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