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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속담말ㅆ·미]호박씨 깐다

opinionX 2017. 11. 22. 14:18

겉보기에 얌전하거나 점잖아 보이는 사람이 뒤로 엉큼한 짓을 하거나 제 실속을 차리는 것을 보면 모여 손가락질하며 그럽니다. ‘누구 완전 호박씨’라고. 그런데 이 ‘호박씨 깐다’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대개 가난한 선비 얘기가 그 유래라고 퍼져 있습니다.

끼니도 잇기 어려운 선비가 외출하고 돌아오니 부인이 뭔가를 뒤로 황급히 감추더랍니다. 나 없을 때 혼자 몰래 먹는구나 싶어 뒤에 감춘 게 뭐냐고 추궁합니다. 그러자 부인이 울며 말합니다. 방바닥에 호박씨 하나가 떨어져 있길래 자기도 모르게 입으로 가져갔다고. 그래서 손에 쥔 걸 보니까 그나마도 껍질이라 둘이 얼싸안고 울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속담 유래라는 이야기들은 대개 있는 속담에 맞춰 그럴듯하게 지어낸 것들이 많습니다.       

그럼 ‘호박씨를 깐다’는 말은 어떻게 나왔을까요.

호박씨는 납작해서 까먹기 참 번거롭습니다. 까기 귀찮으면 껍질째 씹어 삼키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 호박씨 껍질은 소화되지 않고 결국 똥에 섞여 나옵니다. 주전부리 없던 시절, 남몰래 호박씨를 먹자면 껍질 까다 누가 보고 달랠세라 냉큼 통째로 털어 넣겠지요. 그러면 알맹이는 소화되고 까진 껍질들만 뒤, 즉 항문의 다른 말인 뒷구멍으로 나오니 이게 바로 안 먹은 척하고 뒤로(뒷구멍으로) 호박씨를 까는 짓이 됩니다. 같은 속담으로 ‘뒤로 노를 꼰다’도 있습니다. 여기서 노는 노끈입니다. 옛날에는 볍씨를 도정하지 않은 채 보관했다 밥 지을 때마다 절구로 찧어 껍질을 벗겼습니다. 만약 보릿고개에 절굿소리가 나면 사람들이 몰려올 테니 볍씨 그대로 몰래 밥을 지어 먹겠지요. 그리고 똥 눌 때, 못 먹어 나오는 가느다란 똥 줄기에 겨가 잔뜩 섞여 나옵니다. 마치 노끈 새끼 꼬아 나오듯이.

사람이 먹은 대로 누듯, 제 실속 차리자고 꾸민 앞모습도 시간 지나면 그 속 그대로 드러납니다. 확 깨는 벗겨진 껍데기로.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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