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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가 엊그제 심야에 공동대표단 및 비례대표 당선·후원자 전원의 사퇴를 의결했다. 당권파들의 극렬한 저항 속에서 무려 33시간에 걸친 논의 끝에 내린 결론이다. 최종 결정은 1주일 뒤 열리는 중앙위의 몫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결의이자 권고라 할 수 있다. 이는 진보당이 과오를 털고 재기를 모색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점에서 예견했던 바다. 정작 당권파들은 ‘운영위 결정 무효’라고 맞서고 있다. 사태 수습의 출발이 아닌 또 다른 분란을 예고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괴로운 통합진보당 대표들 (경향신문DB)



운영위는 진보당이 이번 사태를 국민들에게 얼마나 잘 설명하고, 제대로 된 수습 방향을 찾아낼 것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보당이 보여준 모습은 실망을 넘어 절망을 안겨줬다. 무엇보다 이정희 공동대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이 대표는 4·11 총선의 비례대표 경선이 ‘총체적 부정·부실 선거’였다는 진상조사위의 조사결과 자체를 거부했다. “의혹만 내세울 뿐 합리적 추론이 없다”는 것이다. 진상조사 활동은 당권파인 그들도 동의한 바다. 그 결과를 못 믿겠다면 누굴 믿겠다는 것인가. 당권파 외에는 아무도 받아들일 수 없는 ‘비례대표 2번 이석기 당선자 보호’처럼 국민들의 인식과는 한참 거리가 먼 정파적 이익에 매달린 결과라 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당권파의 행동들은 보기 민망할 지경이다. 상대편이 발언할 때마다 고성과 야유를 퍼붓기 일쑤였고, 회의를 고의로 지연시키기도 했다. 진상조사위를 겨냥해서는 “당을 X판으로 만들었다”거나 “애당심이 없다”고 몰아세웠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화나 소통은 물론 당내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 이번에 밀리면 재기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 막무가내식 저항에 나섰는지 모르지만 이런 행태들이 진보당의 맨얼굴이라면 그들과 더불어 ‘야권 연대’ 등 후일을 도모한다는 건 쉽지 않다고 본다. 당권파의 행태는 21세기 민주주의 정당이라는 이름 아래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스스로 잘 설명해주고 있다. 


사람이건, 조직이건 갖은 풍파에도 무서운 생명력을 유지하는 건 자정 능력 때문이다. 진보당이 묵과할 수 없는 대형사고를 쳤음에도 수습에 나서는 그들을 지켜보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들의 대응 방식이 스스로 정의한 ‘총체적 부정·부실 선거’ 수위를 넘어서는 실망을 자아낸다면 사정은 다르다. 총선에서 10%를 넘는 정당 투표와 지역구 7석을 안겨준 국민들이 변함없이 지지해줄 리 만무하다. 진보당 당권파들은 당이 살아야 자신들도 산다는 평범한 진리부터 되새기길 바란다. 그들은 이미 소수정당의 비애를 충분히 겪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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