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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트워크

opinionX 2018. 12. 7. 15:30

2015년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월드컵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이 3위를 차지했다. 역대 최고 성적이었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가 트위터에 대표팀의 귀국을 환영하며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의 라이오니스(잉글랜드 여자대표팀의 애칭 ‘암사자’)들이 오늘 엄마, 배우자, 딸들로 돌아간다.” 성차별적 표현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FA는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선수들이 가족과 재회하는 아름다운 순간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했다.

2004년 FIFA 회장이던 제프 블라터는 “여자축구 선수들에게 몸에 착 달라붙는 유니폼을 입혀야 한다”고 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렌나르트 요한손 당시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이 “기업들은 빗속에서 땀 흘리며 뛰는, 사랑스러운 여자선수들의 모습을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런 게 팔린다”고 말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블라터도, 요한손도 더 이상은 ‘회장님’이 아니다. 여자축구의 위상도 달라졌다.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는 발롱도르가 여자 부문을 신설했을 정도이다. 섹시즘도 사라졌을까?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노르웨이 출신 아다 헤게르베르그(23·리옹)가 첫 여성 수상자의 영예를 안았다. 연평균 35골을 넣는 세계 최고 골잡이는 프랑스 DJ 마르탱 솔베이그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트워크(twerk·몸을 낮추고 엉덩이를 흔들며 추는 춤) 출 수 있으세요?” 헤게르베르그는 단호하게 “아니요(No)”한 뒤 몸을 돌렸다. 이내 자리로 돌아와 가벼운 춤을 추긴 했지만, 역사적 순간은 훼손되었다.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에서 영국에 사는 인도계 소녀 제스는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축구선수를 꿈꾼다. 그의 방에는 데이비드 베컴의 브로마이드가 붙어 있다. 제스는 베컴이 차듯 절묘한 각도의 슛을 만들어내기를 갈망한다. 지금 이 순간, 지구촌의 많은 소녀들이 헤게르베르그 사진을 보며 꿈을 키우고 있을 터다. 그들에게 몸에 달라붙는 유니폼이나 섹시한 엉덩이춤을 강요하지 말라. 그들은 헤게르베르그처럼 멋진 슈팅을 하고 싶을 뿐이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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