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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 충암고에서 일어난 ‘급식비 사태’를 보면서 1960~70년대 학교를 다닌 사람들 중에는 아마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당시 각급 학교에서는 정부의 혼식 장려 운동에 따라 새마을주임 교사가 점심 때마다 학생들의 도시락을 열어 혼식 여부를 검사하곤 했다. 만약 보리가 일정량에 못 미친 것이 적발되면 그 자리에서 혼이 났다. 극히 일부의 경우겠지만 밥을 먹다 말고 뺨까지 맞았던 쓰라린 기억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다. 부자여서가 아니었다. 하루하루 살기 바빴던 부모가 미처 챙길 수 없어 혼식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경우가 있었는데도 그런 망신을 당한 것이다.

교감이 급식비 미납 학생들을 공개적으로 질책해 물의를 빚은 충암고는 그런 과거의 망령을 되살렸다. 경향신문 보도에 의하면 이 학교 교감은 식당 앞에 서서 급식비 미납 현황표를 꺼내 학생들과 일일이 대조·확인한 뒤 식당으로 들여보냈다. 개인별로 몇달치 밀렸는지 알려주며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주니 오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다그쳤다고 한다. 이미 급식비 지원을 받고 있던 학생은 그런 말을 듣고 “너무 창피해서 밥을 먹다가 그냥 나왔다”고 토로했다. 학교 측은 급식비를 내지 않은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공개적으로 미납자를 밝혔다고 했다.

그것이 명색이 교육자의 태도인가. 설령 학교 측의 주장대로 급식비 부족분을 해소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2~3일간 학생지도에 나섰다 치자. 그런 경우에도 해당 학생들의 부모에게 얘기를 했어야지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망신을 줄 수는 없는 일이다. 1960~70년대에 당했던 도시락 검사의 아픔이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남아있듯이 감수성이 예민한 10대 중후반의 학생들에게 그런 비인간적·비교육적인 처사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다.

서울의 학부모단체들이 6일 식당 앞에서 교감이 급식비 미납자 명단을 공개해 파문이 일고 있는 충암고 교장을 방문해 항의문을 전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물론 이 시점에서 고등학교까지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자는 것은 비현실적인 얘기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선택급식이라도 최소한 학교 안에서는 차별 없이 밥을 먹고, 공부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학교와 교사의 책무일 것이다. 학교 밥 한번 먹으려고 가난증명서를 떼는 것도 모자라 급식비 납부증까지 ‘검문’당해서야 되겠는가.

당장 4월1일부터 유상급식이 강행된 경남지역에서 이 같은 일이 재현되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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