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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근처의 통인동 재래시장에 즐비한 좌판들. 요즘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옹기종기 담겨 있는 여름 과일이다. 살구, 복숭아, 자두, 포도.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긴 녀석들은 얼굴이 서로 닮았다. 토마토는 비닐하우스에서 살다가 비닐에 포장되어 여기까지 왔다. 울긋불긋한 것들 중에서 내가 오늘 특별히 찾는 건 알알이 빨간 딸기였다.

딸기는요? 물었더니 제철이 지나 출하가 안된다는 대답. 없는 딸기에 더욱 군침이 돌면서 생각은 곧장 경북 상주의 황금산으로 날아갔다.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과 푸른 들판을 마주한 산. 바람이 강의 습기를 배달해주는 덕분일까. 황금산에는 귀한 식물들이 많다고 했다. 임도를 따라 오르는데 길섶으로 산딸기가 주렁주렁 달렸다. 훅훅 볶아대는 땡볕 아래에서 만난 공중의 오아시스. 뱀딸기도 있다. 못 먹을 것 없지만 보기에도 조금 칙칙하고 그저 밍밍한 맛이다. 산딸기 몇 알 입에 넣다가 무심코, 어머니 갖다드리면 좋겠네, 했다.

전망 좋은 정상에는 활공장이 있었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느라 비벼댄 풀 사이로 제비꿀과 솔나물이 드문드문. 그중에서도 두 뼘 크기의 산제비란은 일행을 땅바닥에 납작 엎드리게 했다. 제법 근사한 사진을 찍고 일어서는데 한 분이 어깨를 쳤다. 바람결에 했던 말을 전해 듣고 한 움큼 딸기를 따와선 손바닥을 벌리라는 게 아닌가.

아이고, 산딸기 아이가? 어머니는 천천히 드셨다. 양재기 들고 딸기 따러 억수로 다녔지. 그땐 냉장고가 있었나. 그냥 숟가락으로 퍼먹었지. 산딸기에서는 햇빛에 구운 먼지 냄새가 난다. 바람에 씻긴 빗물 냄새도 난다. 활공장에서 딴 딸기 향을 타고 어머니는 고향의 하늘로 곧장 날아가신 듯. 미수(米壽)라고도 하지만 달걀 두 개를 두 줄로 쌓아놓은 듯 위태로운 나이 88세. 몇 십 년의 시간이 농축된 맛으로 내 어머니를 소녀 시절로 안내하는 산딸기! 장미과의 낙엽 관목.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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