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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1일부터 발행된 지 18개월이 지난 구간이든, 18개월 미만인 신간이든 할인율을 15%로 제한하는 새 도서정가제가 시행된다. 이는 지난 4월29일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 12일에는 개정안의 국회 통과 이후 출판계의 요구를 일부 반영한 시행령 개정안까지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새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새 도서정가제가 과도한 할인을 억제해 출판 생태계를 바로잡고 동네 중소서점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편법 할인만 부추길 것이라는 견해와, 현 상황에서는 새 도서정가제 시행이 최선의 대안이라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특히 새 도서정가제가 책값만 올려 소비자 부담을 가중시키고,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의 배만 불릴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 편법 할인 우려…‘100% 정가제’로 책 생태계 키워야

오는 21일부터 개정돼 시행되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은 ‘도서정가제 적용 범위 확대와 총할인율 15% 제한’이 뼈대이다. 출판·서점계는 판매량 감소와 할인경쟁의 가속화 속에서 지역 서점들이 고사하는 등 빈사 상태에 빠진 책 생태계와 뒤틀린 시장질서 정상화에 다소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과잉 재고를 ‘땡처리’하는 할인전쟁도 과도기 현상이라 여겼다. 한편으로 책값 상승을 우려하는 ‘제2의 단통법’ 논란도 거셌다.

그렇지만 새 도서정가제 시행이 코앞인 시점에서, 그런 기대나 우려는 모두 빗나간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1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에는 모법이 정한 ‘15% 총할인율’ 범위에 포함시켜 달라고 관련 업계가 요구한 사항들이 주무 부처의 뒤늦은 약속과 달리 대부분 증발했다. 또 12일 현재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특별 재정가 책정을 신청한 구간(18개월 경과 도서) 약 3000종의 평균 할인율이 무려 57%나 돼 명칭만 달라진 할인 폭풍이 계속될 것임을 예고했다. 상당수 유통업체는 시행령 개정안 시행일부터 대대적인 ‘재정가 도서 기획전’에 나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출판시장 규모가 축소되는 가운데 우회적인 할인 경쟁의 진흙탕 싸움은 점입가경이 될 공산이 커졌다. 즉 개정법 시행으로 거품가격이 빠지고 유통질서가 정상화되기는커녕 경품, 무료 배송, 제휴카드 할인, 여기에 할인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세트 판매, 반값 할인을 웃도는 구간의 재정가 책정에 이르기까지 ‘할인의 수압’이 종전보다 훨씬 강도 높게 출판시장을 짓누르며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자의 책값 신뢰도는 땅에 떨어질 것이다. 책에 관련된 모든 이들을 피해자로 만드는 기현상이다.

일이 이렇게까지 꼬인 데는 모든 유형의 할인을 ‘15% 총할인율’ 안에 담으라는 국회의 결정을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해석한 영향이 크다. 이를테면 추가로 25%까지 청구할인이 되는 인터넷서점 제휴카드의 경우에도, 주무부처는 모법이 정한 ‘경제상의 이익(할인 범위)’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허용된다고 단정하고 시행령 반영을 정면 거부했다. 그 근거로 대법원 판례를 들었지만, 법원이 카드사 등 제3자에 의한 추가 할인이 가능하다고 해석한 관련 조항은 개정법에서 이미 삭제된 것이다. 옛 판례로 새 법을 재단한 셈이다. 이렇듯 법리나 원칙을 무시하는 주무부처, 경쟁논리만 앞세우는 규제개혁위원회 등의 결정은 ‘15% 총할인율’을 정한 국회의 개정 입법 총의를 무시하고 무력화시켰다.

정가제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하지 말자는 것도 아닌 ‘엉망진창 절충법’은 이제 청산해야 한다. 출판산업은 물론이고 저자부터 독자에 이르는 책 생태계 전체를 피폐화하는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책과 관련된 이해관계자 모두가 만족하며 공생하는 지혜로운 해법은 ‘완전한 도서정가제’ 법을 만드는 길뿐이다.

앞으로 의원입법을 통해 만들어야 할 ‘100% 도서정가제’에서는 프랑스의 일명 ‘반아마존법’이나 독일의 도서정가제 유통 공급률 차별 금지 조항 등을 담아 책의 생산·유통·판매에서의 다양성을 담보해야 한다. 이는 종국적으로 독자, 즉 국민 모두에게 가장 큰 이익을 줄 수 있다.

다양한 책과 저자, 출판사, 유통 경로가 공존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때 양질의 콘텐츠 재생산 구조와 문화적 다원성 확보, 산업 내 양극화 해소,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소모적인 책값 제도 논란의 먹구름을 걷어내고, 책으로 크는 시민과 나라를 만드는 일에 그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백원근 |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10월 16일 서울 종로구 대한출판문화회관에서 '올바른 도서정가제 정착을 위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_ 연합뉴스




■ 시장질서 정상화 첫 발…정착 위한 ‘상생의 묘’ 필요

‘제값 받는 책, 제값 하는 책.’ 이는 새 도서정가제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전국 서점에 배포한 홍보용 리플릿에 있는 슬로건이다. 다소 추상적이긴 하지만 새 도서정가제의 취지를 그대로 담았다고 생각한다. 책이 제값을 받기 위한 몸부림이 도서정가제를 정착시키고 변화시켜온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책에 혼신의 열정을 쏟아붓는 작가와 출판계 종사자, 유통 관계자들의 노력이 일부 상술로 인해 폄훼로 이어지는 상황을 종종 보아 왔다.

시장에서 가치를 평가 받지 못한 책은 상당한 거품이 낀 가격으로 유통업체로 보내졌고, 독자들은 유통업체가 내놓은 할인가 아닌 할인가에 현혹되어 소중한 문화공공재를 저렴하게 구매하는 듯한 착각에 빠져왔다.

오는 21일부터 시행되는 새 도서정가제는 경제상의 이익을 포함한 할인율을 19%에서 15%로 축소하는 것과 18개월 이상 도서, 초등 학습서, 실용서를 정가제 제외도서에서 대상 도서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는 도서정가제가 도입된 지 10여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과다할인 경쟁으로 유통질서가 훼손돼 출판생태계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판단에서 시작됐다.

또 책의 가치를 가격에 두지 않고 콘텐츠와 질에서 찾자는 취지에서, 그리고 그 궁극적인 혜택을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선물하자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도서정가제의 할인율과 제외 범위 등을 의제로 출판계, 유통업체, 소비자단체, 정부 등이 참여하는 상생협의회를 수차례에 걸쳐 부단한 노력과 진통을 거듭했다. 마침내 출판계와 유통업계가 조금씩 양보하고 조정해 할인율은 15%로 조정하는 방안에 상호 합의했다.

이러한 내용의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일부 개정안인 새 도서정가제가 지난 4월29일 국회를 통과했다. 사회적 논의와 합의에 기초한 새 도서정가제의 정착은 반드시 필요하다. 새 도서정가제의 원칙과 기본정신도 살려야 한다.

오는 21일부터 시행되는 새 도서정가제는 향후 법 테두리 안에서 운용의 묘를 살릴 수 있는 부분, 시행령을 개정해 해결할 수 있는 부분, 업계의 자율적 협의를 통해 스스로 노력할 수 있는 부분들을 협의해 실효성을 높여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자율협약의 결과로 새 도서정가제 시행 전에 단행된 발행된 지 18개월이 지난 구간(舊刊)에 대한 특별재정가에 146개 출판사가 2993종의 도서를 평균 57% 인하된 가격으로 참여했다. 상생과 윈윈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자 새 도서정가제 시행에 즈음해 출판계가 독자들에게 드릴 수 있는 작은 선물이리라.

어떤 법이 시행되는 시점에는 그 영향이 어떻게 나타날지 걱정하는 목소리와 철저한 사전대비를 위한 노력들로 분주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시장에서 발생 가능한 다양한 변수에 따라 노정되는 문제들을 협의해 나가는 소통창구와 보완·개선하는 구조가 지속 가동되고 있으며 또한 가동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정부와 출판·유통업계는 이미 새 도서정가제의 세부사항과 관련한 ‘합의’를 이끌어 낸 경험이 여러 번 있다. 그리고 출판·유통업계와 함께 이루어낸 합의는 “출판시장을 살려 양질의 도서를 국민에게 안겨주자”는 기본정신에서 시작되었다.

출판·유통업계가 공공재로서 책의 가치 확산을 위해 ‘열린 자세’로 협의하고 협력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독자들은 그 결과를 보고 책의 가치에 대한 신뢰를 결정해 줄 것이다.

<배진석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출판기반조성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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