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 2018년 8월30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의 최종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12·28 한·일 정부 간 합의엔 “생존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견이 충분히 수렴되지 않았고, 그 해법이 2차 세계대전 이전과 도중에 군에 의해 이뤄진 여성에 대한 인권 침해에 대해 (정부의) 명백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이에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위안부’ 문제는 유엔 위원회에서 다룰 게 아니라고 주장하며, “이런 권고가 계속되면 위원회 존재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라 ‘협박’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3일 서울 종로구 외교통상부 청사 앞에서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2. 2015년 한·일합의의 부산물인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정부가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당사자인 김복동 할머니는 8월31일 외교통상부 청사 앞에서 즉각 해산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신다. 이에 화답하듯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위한 국민청원 캠페인이 벌어지고 주로 젊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릴레이 포토선언이 이어진다.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를 더 이상 힘들게 하지 말고, 하루빨리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여 주십시오! 저 ○○○은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요구하는 일본군 성노예피해 할머니들의 외침에 함께하며, 이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함께합니다!”

같은 시기인 9월9일, 일본 오키나와의 미야코섬에는 조선인 ‘위안부’들을 기리는 기림비건립 10주년 기념식과 보다 정의로운 미래를 위해 과거를 기억하고 계승할 것을 다짐하는 학술행사가 현지 주민들과 활동가들, 한·일 연구자들과 정의기억연대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진행된다.

#3. 2018년 10월10일부터 14일까지,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단 해상자위대 군함이 제주해군기지에서 열리는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 참석을 핑계로 평화의 섬 제주에 들어올 예정이라고 한다. 시민들이 반발하고 정부가 변명으로 일관하는 사이, 김복동·길원옥 할머니께서는 태풍 ‘제비’로 인해 재일조선인학교가 입은 피해 복구지원을 위해 각각 1000만원과 300만원을 후원하신다.

#4. 2014년 6월25일, 미군 기지촌 ‘위안부’ 당사자 122명과 기지촌여성인권연대, 새움터, 국가배상소송공동변호인단은 국가대상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시작한다. 2017년 1월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정신적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판결한 데 이어, 2018년 2월8일 서울고등법원 민사22부는 “국가의 기지촌 운영·관리 과정에서 기지촌 위안부였던 원고들을 상대로 성매매 정당화·조장행위와 위법한 강제 격리수용 행위가 있었”으며 이로 인해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했다고 인정하고 원고 전원에게 위자료 지급을 명한다.

#5. 2018년 7월24일, (사)평택시민재단·(사)햇살사회복지회가 공동주최한 ‘평택시 기지촌여성(미군위안부) 지원 조례 제정을 위한 시민토론회’가 개최된다. 당사자들과 연구자, 지역 활동가들이 미군 기지촌의 역사를 알리고, 고법 판결을 현실화하여 여성들의 인권회복과 지원체계 마련을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자리다. 여기에 일부 상인과 주민들이 난입해 자리를 차지하고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부으며 손가락질한다. ‘반미 감정을 조장하는 행위’ ‘미군위안부라는 말의 공용화로 미군과의 갈등 조장, 이로 인한 상인들의 생존권 위협’ 등을 외치고, 심지어 ‘자발적으로 매춘을 선택한 여성들’이라며 현장에 있던 당사자들을 폄훼한다. 연이어 8월16일, 평택시의회 유승영 시의원과 평택시 여성가족과의 주최로 기지촌여성(미군위안부) 지원조례 추진 시민단체 간담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조례 내용과 관련 없고, 참석대상도 아닌 사람들이 버스까지 동원해 몰려와 난동을 부려 결국 간담회는 무산된다.

#6. 2018년 9월14일과 15일, 광화문 세실극장에서는 <문밖에서>라는 연극이 공연된다. 미군 기지촌 ‘위안부’ 당사자들과 <일곱집매>(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그린 2012년 작품)라는 공연에서부터 함께한 연출가와 배우들이 한 무대에서 조화를 이룬다. 할머니들의 일상과 과거, 오늘날 젊은이들의 고통스러운 현실과 과거 대한민국 여성들의 삶이 이중으로 포개진 격자구조를 잘 표현한 무대다. 관객석에는 시민들과 기지촌 활동가들, 반성매매 활동가들뿐 아니라 일본군 성노예제도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일본의 연구자·활동가들도 감동 어린 시선으로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묻습니다. 무엇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으며 무엇을 모르셨나요. 겹겹의 경계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요. 9월5일 수요시위에서 한 학생이 들었던 손팻말 내용이 생각납니다. “일본의 무기가 망각이라면, 우리의 무기는 기억이다.” 당신의 무기는 무엇인가요?

<이나영 | 중앙대 교수·사회학>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