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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를 당한 이듬해인 2010년, 봄이 막 올 무렵이었다. 회사 앞에 천막을 친 사람들이 가까운 산에 올랐다. 토관에 강아지 두 마리가 있었다. 버려진 강아지들을 외면할 수 없어 데려와 함께 산 지 네 해째. 이제는 듬직한 개가 되었다. 해고된 뒤 마음 상할 일이 많았을 텐데도 순하기만 한 주인들을 지켜보았겠지. 말 안 해도 다 안다는 듯이.


경기도 화성시 장안외국인투자전용산업단지에 있는 프랑스계 기업 포레시아 앞, 황량한 벌판 한쪽에 컨테이너와 천막으로 지은 농성장이 있다. 천막 안에서 해고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누군가 쪼르르 땅바닥에서 바쁘다. 뭐가 그리 궁금한 게 많은지 부스럭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짐작은 가지만 무심한 척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마주친 쥐 한 마리. “내 집에 온 넌 누구니?” 하는 자세다. 


(경향신문DB)


“아침에 매가 한 마리 다녀요. 여기가 제일 안전한지 들어와서 집을 짓고 사네요. 사람이 있어도 왔다갔다 하고. 저것도 생명이니…. 잡긴 잡아야 하는데 못 잡겠더라고요.”


살려고 들어온 생명을 내치지 않는 사람들. 이병운씨는 십여 년 동안 자동차 부품을 만들었는데 회사는 그와 동료 열여덟 명을 내동댕이쳤다. 투병 생활을 하는 두 사람과 직장에 나가야 하는 이들을 빼고 여덟 명이 아침마다 여기서 모인다. 7시20분부터 8시까지 출퇴근하는 주야간 조 동료들을 눈으로 만난다. 밤에는 한 명씩 농성장 당직을 선다. 공장도 24시간, 이들의 복직투쟁도 24시간 멈추지 않는다. 


두 해 전, 고등법원은 부당해고 판결을 내렸다.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행정심판에서 내리 진 터라, 직접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물론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시간과 돈에 강자인 회사가 항고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대법 판결에 해고자들은 밤잠을 설친다.


“회사에 미련이 남았느냐. 가족을 생각해라.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지 왜 그렇게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고 잘 아는 이도, 모르는 이도 쉽게들 말한다. 이들은 왜 여기, 이 일을 떠나지 않을까. 회사는 경영상 위기라고 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지회가 있는 사업장만 구조조정을 했고, 고용보장 확약을 무시했다. 이들을 내쫓는 동안에도 일이 넘쳐 희망퇴직자들을 붙들어뒀다. 남은 이들에게는 금속노조 탈퇴를 강요했다. 끝내 여덟 명이 버티자 그들을 괴롭혔다. 잔업과 임금 인상에서 배제하고, 근무시간 내내 현장이 보이는 사무실 통유리창 앞에 벌세우고, 노조 조끼를 입은 몸에 라커를 뿌려대고, 침을 뱉고 욕을 했다. 최근에 정년퇴직한 한 조합원은, 그때 충격으로 한동안 밥을 못 먹었다. 


“정당하지 않은 일이 현장에서 자꾸 벌어져요. 대한민국 땅에서 이렇게 하는 데가 어디 있어요? 이런 현실을 보고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그 사람들이 그만큼 견디는데 제 처지에서는 못 도와준 게 마음이 아파요.”


회사 부추김에 따라 이 일에 나섰던 이들 중 몇이 고소·고발을 당하고서야 후회했다. 미안해했다. ‘정리해고’가 목표로 하는 건, 생산 현장 어딘가에 남았을 ‘인간’과 ‘희망’을 도려내는 거였을까. 


회사는 노동자를 일만 하는 기계처럼 부리고, 정규직을 잘라내고 비정규직을 늘린다. 잔업과 특근이 강제이다시피 해 노동자에겐 일 말고 뭔가를 할 시간이 없다. 짜증부터 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회사 눈 밖에 날까 두려워 아무 말도 못한다. 어쩌면 그런 마음마저 들킬지 모른다. 감시카메라 같은 눈길이 곳곳에 있으니. 희망이 안 보인다며 젊은 노동자 일곱 명이 얼마 전 정규직 자리를 관뒀다는데, 생산 현장에서 감히 ‘희망’을 찾는 건 이제 죄일까.


박수정 |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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