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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콜센터 상담원까지 노동자가 아니라고 하다니 원….” 한국고용정보 소속이지만 교직원공제회에 파견돼 전화로 보험 판매를 하던 현희숙씨. 그녀가 한국고용정보 대표이사 친인척 특혜 문제를 제기한 뒤인 지난해 8월 회사는 해고 통보를 했다. 너무 억울해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지방노동위는 부당해고라며 원직복직 판정을 내렸는데, 불과 몇 개월 뒤 중앙노동위는 이와 180도 다른 결정을 내렸다. 현씨의 업무를 아예 ‘노동자’로 볼 수 없다는 취지였다. 또다시 특수고용 문제로 본 것이다. 콜센터 상담원이 노동자가 아니다?


문제는 한국고용정보와 현씨가 체결한 계약이 ‘위촉계약’이라는 점, 근무 실적에 따라 수당을 지급받아 왔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현씨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까? 회사에 입사하려면 위촉계약을 체결하고 이런 불합리한 수당제도를 받아들여야만 했을 것이다. 회사가 ‘근로계약’과 ‘월급제’라는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국건설노조 노조원들이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경향DB)


이런 식으로 하루아침에 멀쩡한 노동자를 ‘개인사업자’처럼 둔갑시키는 것이 특수고용이라는 굴레다. 이런 논리대로면 자동차 조립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근로계약서 이름을 ‘위촉계약’ 또는 ‘위탁계약’으로 살짝 바꾸고, 임금체계를 6㎜ 볼트 하나 박는 데 10원, 8㎜ 볼트 하나에 11원…, 이런 식으로 실적 성과급제처럼 바꾸기만 하면 개인사업자로 둔갑된다. 이렇게만 해놓으면 자본가들은 노동자에게 당연히 지급해야 할 연차 수당과 주차수당·퇴직금은 물론이고, 4대 보험을 책임져야 하는 의무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무엇보다 가장 골칫덩어리인 노동조합을 깨부술 수 있게 된다. 개인사업자로 둔갑시키면 노동조합 결성 자체를 불법으로 몰아붙일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자본가들의 ‘둔갑술’에 맞서 레미콘·덤프·화물트럭·퀵서비스·대리운전기사, 보험모집인, 간병인 등 수많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십수년째 자신들을 노동자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며 싸워왔다. 정치권은 선거 때만 되면 특수고용 문제 해결을 외치다가도, 집권만 하고 나면 나 몰라라 하며 외면해온 것이 지난 10여년의 역사였다.


그러는 사이 자본가들의 ‘둔갑술’은 더욱 기승을 부려, 특수고용 노동자 수가 무려 250만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들의 고통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점을 인식했는지, 최근에는 국가인권위·국민권익위·입법조사처 등 국가기관들조차 특수고용 문제 해결을 위한 입법·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이 학습지 교사에 대해, 수원지방법원이 골프장 경기보조원에 대해 각각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인정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자본가들의 둔갑술이 최첨단을 달리는 상황에서 늦었지만 의미있는 하급심 판결이 나왔다는 점은 환영할 만하지만, 대법원 최종판결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용자는 판결을 무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특수고용 문제 해결은 온전히 법 개정을 통할 수밖에 없다. 사실 법 개정 방식은 의외로 쉽다. 노조법 2조의 문구 몇 개만 수정·첨가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쉬운 일을 10여년 동안 묵혀왔다는 것이 신기한 일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산재보험·고용보험을 일부 특수고용 직군에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쉬운 길을 왜 돌아서 가려 하는가?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기만 하면 산재보험·고용보험은 별도 법 개정이나 제도 개선 없어도 저절로 따라온다.


지난해 11월 국회 환경노동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새누리당도 이례적으로 특수고용 노동자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인 바 있다. 그렇다면 이번 4월 임시국회에서는 노조법 2조 개정을 완성해야 한다. 250만명에 달하는 특수고용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명쾌한 해법이다. 이것 없이 ‘창조경제’와 ‘민생문제 해결’은 요원할 것이기에.



오민규 | 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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