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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과 청산리 독립전쟁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여러 차례 순국제현(殉國諸賢)이나 순국제씨(殉國諸氏) 추도회를 열었다. 굳이 번역하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여러분’이라는 뜻이다. 일제 침략자들에 맞서 함께 싸우다 먼저 죽은 사람들은 그들의 동지이자 친구였지 조상이나 웃어른은 아니었다. 해방 직후 국민의례를 할 때에도 그들은 순국열사(殉國烈士)로 불렸다. 세월이 흘러 그들의 아들 손자뻘 되는 사람들이 성인이 된 뒤에야, 그들은 ‘선열(先烈)’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한국인들이 ‘나라를 지켜주는 영명한 혼령’이라는 뜻의 ‘호국영령(護國英靈)’이라는 말을 처음 접한 것은 1937년 중일전쟁 발발 무렵이었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침략전쟁에서 전사한 일본군들을 호국영령이라 부르며 ‘조선인’들에게도 그들에 대한 감사와 추모의 마음을 가지라고 강요했다. 호국영령이라는 개념은 본래 일본 신도(神道)에 어울리는 것이다. 그 무렵 일본인들은 자기 나라는 ‘신국(神國)’으로서 신사(神社)에 모셔진 온갖 영령들이 나라를 지켜준다고 믿었고, 그들에게 나라를 지켜달라고 빌었다. 일본 군국주의 부활의 상징으로 알려진 야스쿠니 신사가 바로 일본의 호국영령들을 모신 곳이다.
그런데 호국영령이라는 개념은 당시 ‘조선인’들에게는 아주 낯설었다. 조선왕조 때에도 영령이라는 말을 더러 쓰기는 했으나, 왕의 선조나 최고위급 대신, 성현(聖賢)의 반열에 오를 만한 대학자에 국한했다. 살아서 평범했던 사람은 전쟁터에서 죽었더라도 영령이 될 수 없었다. 더구나 국가와 종묘사직을 지키고 보살피는 건 천지신명과 열성조(列聖祖)였다. 전쟁터에서 죽은 병사들의 혼령은 위무(慰撫)의 대상이었을 뿐 기원(祈願)의 대상은 아니었다. 대한제국 때, 대한이라는 나라 이름이 길이 보전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만든 애국가에서도 나라를 지켜주고 보살피는 존재는 영령이 아니라 ‘하느님’이었다.
아시아·태평양전쟁 중 ‘호국영령에 대한 묵도’는 궁성요배, 신사참배와 짝을 이루는 의례였다. 남의 나라를 침략해 들어갔다가 남의 땅에서 죽은 병사들의 혼령에 ‘호국영령’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나, 식민지 원주민들에게 그들의 혼령에 감사하는 마음과 그들이 제 나라를 지켜주리라는 믿음을 가지라고 요구한 것이나, 다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조선인들은 그에 익숙해져야 했다.
해방을 맞은 즉시, 한국인들은 일본 ‘귀신들’을 몰아내는 일에 착수했다. 궁성요배는 즉각 중단했고 전국의 신사(神社)들에 불을 질렀다. 국민의례에서는 ‘순국열사’가 ‘호국영령’의 자리를 대신했다. 심지어 기독교계 일부에서는 ‘순국열사에 대한 묵념’도 우상숭배에 해당하니 폐지하자고 주장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1일 국립 현충원 방명록에 "호국영령앞에 나라를 지키고 발전시키는데 한나라당이 중심이 되어 소임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고 적고 있다. (경향DB)
6·25전쟁은 일본 군국주의가 구축했던 ‘전시 총동원체제’를 되살려냈던 바, 일본 군국주의가 만든 상징과 개념들 역시 그 틈에 슬그머니 부활했다. ‘호국영령으로 산화(散花)한 전몰장병’은 극히 일본적인 개념이지만, 그 무렵 대중에게는 익숙한 것이었다. 이후 현충일 등 군 관련 행사 때에만 사용되던 이 개념이 국민의례에 다시 침투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였는데, 2010년 7월27일 대통령훈령 제272호로 제정된 ‘국민의례 규정’은 아예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공식화했다.
이미 70년도 더 지난 옛일을 다시 들먹여서 무슨 소용이냐고 하는 사람이 많지만, 까맣게 잊었던 감성이 과거와 유사한 상황을 맞아 불현듯 되살아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한·일 양국에서 식민통치 미화론이 세력을 키워가는 상황이기에,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한국인들의 잠재의식에 심어놓은 상징과 개념을 다시 마주하는 심사가 더 편치 않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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