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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속담말ㅆ·미]긁어 부스럼

opinionX 2017. 10. 11. 13:25

- 10월 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가만두어도 될 것을 공연히 건드려 일이 잘못되거나 힘들어지는 것을 뜻하는 ‘긁어 부스럼’과 같은 속담으로 ‘공연한 제사에 어물 값만 졸린다’가 있습니다. 조선 초기에 평민은 부모 제사만 지내면 되고 사대부는 2대, 고위직은 3대까지만 제사를 지냈는데 남의 제사를 경쟁적으로 따라 하느라고 조선 중기 이후엔 양반이든 평민이든 사대봉사(四代奉祀)로 부모-조부모-증조부모-고조부모까지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해마다 지내는 제사 횟수가 크게 늘어 생선이니 포니 제수(祭需) 마련하는 부담으로 살림이 휘청거리게 되었습니다. 조상에 대한 예의와 효심을 번듯하게 내보이려다 말입니다.

또한 조선시대의 제사상 차림은 정말 간소했습니다. 어린애 밥상만 한 작은 상에 음식 몇 가지만 올라가 있었으니까요(독상이라서 각 신위 앞에 똑같이 차린 상 하나씩 놓습니다). 지금도 종갓집 일부에서는 그렇게 독상마다 몇 가지 음식만 올립니다.

허균의 소설 <허생>에는 허생이 부자에게 10만 냥을 빌려 전국의 사과, 배, 대추, 감 등 주요 과일들을 싹쓸이하자 과일 없는 제사를 지낼 수 없다며 열 배 값으로 되사간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사람들의 허례허식을 비꼰 것이지요. 현대에 와서도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홍동백서, 좌포우혜로 차리지 않으면 격식을 갖추지 못하는 것인 양 없는 살림에 어떻게든 즐비하게 상을 채워 올립니다.

저희 집안은 이번 추석부터 전을 안 부치기로 했습니다. 요즘 후손들에게 자신들의 고생을 물려주지 않겠다며 나이든 어른들이 나서 상차림을 간소화하는 추세입니다. 그리고 명절 때마다 알뜰한 상차림도 이야기됩니다. 그 ‘알뜰하다’라는 말에는 일이나 살림을 정성스럽고 규모 있게 하여 빈틈이 없다는 뜻과 함께, 다른 이를 아끼고 위하는 마음이 참되고 지극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어물 값과 삶의 허리 모두 졸리지 않는, 진정 알뜰한 상차림이란 무엇일까요.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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