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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끼리라서 하는 말인데.” 소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렇게 운을 뗀다는 건 스스로 이 행동이 떳떳지 못하다는 걸 아는 겁니다. 아니, 사실 뭘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일 겁니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하던 거니까요. 끼리끼리 모이면 뒷담화-원래는 말로 뒤통수를 친다는 은어 ‘뒷다마(다마는 머리통의 일본 속어)’가 우리말인 척 교묘히 바뀐 것입니다-만 한 재미가 없습니다. 공동의 적이나 무리의 왕따를 수군대는 것만큼 후련한 카타르시스가 없지요.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또한 다 같이 흉보는데 혼자 침묵하면 당사자한테 말 옮길지 모른다는 의심 살 테니 눈치껏 맞장구도 칩니다. 손뼉치고 맞장구치다가 긴가민가한 얘기들까지 추임새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한 마디씩 거들고 한 소절씩 보태다보니 한 숟가락 소문이 십시일반 한 상 가득 진수성찬으로 부풀려집니다. 나중에 소문 들은 당사자들에게 여러 번 혼쭐나고도, 자기 자신이 소문의 피해자가 되어 시뻘겋게 날뛰어보고도 남의 말이라면 앓다가도 쌍지팡이 짚고 나섭니다.

하지만 남의 말 재미에 빠져 지금의 우리끼리가 흩어져 또 다른 우리끼리가 될 수 있다는 걸 말할 땐 미처 생각 못합니다. 나중에야 겁이 나 다짐받습니다. “어디 가서 말하지 마.” 단순우매하지요. 자신도 못 다문 입으로 타인의 입에 두터운 비밀보장을 요구하니. 내가 그러더라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합니다.

어떻게든 드러나니 남의 말은 말라는 속담이 ‘두터울수록 샌다’입니다. 남의 말 하는 자기들끼리는 참 은밀하게 두텁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너나없이 다리가 달려 있고 입이 뚫려 있습니다. 거기서 다짐받은 ‘진짜 너만 알고 있어야 돼?’가 머릿속을 맴돌지만 입술이 옴질옴질 달싹달싹 결국 운을 뗍니다. “혹시 그거 알아? 누가 그러던데…” “누구?” “어…” 입이 몇인데 소문낸 게 소문 안 날 리 있나요.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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