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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직설]비국민의 후예들

opinionX 2018. 7. 17. 10:19

책상물림이라는 콤플렉스 때문인지 평소에 어떤 문제든 추상적이 아닌, 구체적 상황 속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것은 어떤 문제든 진공상태가 아니라 현실적 상황, 그리고 ‘나의 상황’ 속에서 이해하라는 현자의 가르침 덕분이고, 대학 교양과목에서 배웠던 다음과 같은 방식의 사유에 빚진 바 크다. 우선 학생들에게 본인이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어보라 한다. 아무도 없다. 다음으로는 이주노동자의 국내 유입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묻는다. 한두 명이 거수한다. 셋째, 이주노동자 집단촌이 우리 동네에 들어서는 데 반대하는가를 묻는다. 손들이 많아진다, 그러나 여전히 관용이 다수다. 넷째, 이주노동자의 자녀와 내 아이가 한 학급에서 공부하고 심지어 짝이 된다면? 다섯째, 그 아이들이 커서 결혼을 하겠다고 할 때 찬성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무리 평등주의자라고 하더라도 다섯 번째 즈음에서는 망설임 없이 손을 드는 경우가 드물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 동네에 납골당이 들어선다고 하자 평소에 조용했던 주민들이 들고 일어섰다. 주민들이 나무 등걸에 매달아 놓은 하얀 소복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던 기억도 난다. ‘왜 사람들이 반대를 할까? 좀 으스스하긴 하지?’라고 묻자 엄마는 “이 철딱서니 없는 것아, 집값 떨어지면 좋겠니?”라며 내 등짝을 후려쳤다.

최근 제주도의 예멘 난민 500여명의 수용을 두고 말들이 많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가 ‘엄격한 심사를 통해 제한적으로 난민 수용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지난 주말에는 ‘국민이 먼저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난민법 폐기를 주장하는 집회도 열렸다. 65만여명의 주민들이 500여명의 낯선 난민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문제는 터키 해안가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세살배기 ‘쿠르디’ 소식을 듣고 우리가 느꼈던 공분과 세계시민주의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숙고해야 할 구체적 현실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간과하고 있는 것은, 지금의 ‘나의 상황’이 지극히 우연적이고 가변적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시스템하에서 우리가 일종의 특권적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은 수십 년에 불과하다. 일제강점기의 36년간 우리는 한용운의 시 ‘당신을 보았습니다’에서처럼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이다”라는 소리를 듣는 걸인이었고,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이 없습니다. 민적이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냐”라는 능욕을 당하던 비국민이었다.

1945년 해방 당시 200만여명에 해당하는 재일동포들은 취업을 위해 일본에 잠입한 가짜 난민이 아니라 강제징용으로 끌려가거나 생존을 위해 달아난 진짜 난민들이었고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들이 방화, 약탈을 일삼고 물에 독을 타려 한다”는 유언비어에 의해 집단살해를 당한 이들의 가족이다. 참정권은 물론 임금, 취직 등에 있어서 극심한 차별을 받았던 이 ‘비국민’의 고난은 2000년대 ‘재특회’라는 한인 혐오단체로까지 이어진다. 일제에 의해 만주국으로 끌려간 100만여명의 이산인들은 여전히 비주류 국민으로서 중국과 한국에서 ‘조선족’이라는 차별을 겪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후쿠오카 형무소의 윤동주처럼 만주 관동군 747부대에서 생체실험의 마루타로 죽어갔다.

일본 첩자라는 혐의로 1937년 하루아침에 기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했던 소련 연해주의 한인 17만명 중에는 청산리대첩의 영웅 홍범도 장군 같은 이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들 생애는 극장 수위로 죽음을 맞은 홍범도 장군의 쓸쓸한 죽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의론>의 저자 존 롤즈는 ‘무지의 베일’이라는 원초적 입장에서 사회운영을 생각해볼 것을 권고했다. 즉 우리가 남자 혹은 여자, 부자 혹은 빈자, 귀족 혹은 불가촉천민, 장애인, 성소수자 그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사회 정의와 운영을 생각해보라는 거다. ‘국민이 먼저다’라는 핍진한 ‘나의 상황’에 대한 현실적 인식은 오랜 세월 동안 국민 바깥에 있었고, 여전히 국가 바깥에서 떠돌고 있는 700만명의 이산인을 지닌 우리의 역사와 더불어 사유되어야 하지 않을까.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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