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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인에 대해 공부를 하다 보면, 어떤 작품을 언제 썼더라, 이때 그가 무엇을 하고 있었지 하는 의문이 든다. 꽤나 중요한 작품이어서 창작 연도를 꼭 알고 싶은데, 알 길이 없다. 이럴 때면 소상한 연보가 있었으면 한다. 물론 유명한 문인이라면 문집에 문인의 비문이나 행장 같은 것이 있어서 대충 그 사람의 생애는 알 수가 있다. 또 조금 더 유명한 인물로 벼슬을 했다면 <조선왕조실록>이라든가 <승정원일기> 같은 관찬 사료에 이름이 나온다. 이것으로 참고할 수도 있다. 그래도 좀 더 자세한 것을 원할 수도 있다. 또 일반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유명한 학자, 정치인이라면 문집 끝에 연보가 있다. 이 경우 해당 인물을 이해하는 지름길을 만난 것 같다.

연보도 갖가지인데 내가 본 정말 상세한 연보는 <주자연보>다. 모두 4권인데, 약 600페이지쯤 된다. 우리 쪽이라면 송시열의 연보가 압권이다. 송시열은 워낙 주자를 절대적인 진리의 담지자로 알고 살았던 사람이고, 그의 제자들은 송시열을 꼭 주자처럼 섬겼다. 그래서 그의 문집도 <주자대전>을 따라 <송자대전>으로 만들었고, 그 권수도 체제도 <주자대전>을 따랐다. 이건 좀 건방진 일이라 정조 역시 그게 뭐냐고 비꼬았을 정도다.

어쨌건 <송자대전>의 송시열 연보는 <주자대전>을 본떠 양도 엄청나다. <송자대전>은 215권이고, 그 뒤에 부록이 19권, 습유가 9권, <송자대전> 속 습유 부록 2권, <송자대전> 수차가 13권이다. 뭐가 이렇게 복잡하냐고 할 것이다. 원래는 <송자대전>과 부록까지가 끝이다. 나머지는 뒤에 새로 찾아 추가한 것이다. 연보는 뒤로 갈수록 자세하다. 송시열이 죽는 해인 1689년의 경우 1월에서 사약을 받고 죽은 날인 6월8일까지가 한 권 분량이다. 그런데 이 연보는 희한한 것이 송시열이 죽고 난 뒤 1787년 정조가 <대로사비>의 비문을 써서 내릴 때까지 거의 100년이 이어진다. 송시열은 죽었지만 그의 당파가 계속 정치권력을 장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송시열의 연보는 또 그가 노론의 영수였기 때문에 당연히 그의 모든 행위를 정당화한다. 예컨대 연보는 자신이 자연사하기 전에 사약을 받겠다면서 사약을 재촉하고 몸을 일으켜 단정히 앉은 채 약을 마시고 의연히 죽는 송시열을 그리고 있지만, 반대 당파의 기록은 어떻게 하든 죽음을 모면하기 위해 계략을 쓰는 송시열을 그리고 있다. 송시열과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연보도 있지만 그 내용이 판이하다. 송시열과 원수지간이었던 박세당·윤증의 연보는 동일한 사건이라도 당연히 의미 부여가 다르고 어떤 경우 사건의 구성 자체까지 다르다.


연보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 있어 1차 자료가 된다. 이토록 중요한 것이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연보에 대한 관심이 희박하다. 예컨대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학자는 당연히 다산 정약용이지만 현대에 만들어진 연보는 없다.

송재소 선생님이 최근 번역한 <사암선생연보>(창비, 2014)는 원래 후손 정규영이 작성한 것이다. 21세기의 관점에서 다산과 관련된 자료를 모두 섭렵하고 작품의 창작 연대까지 포괄한 그런 연보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다. 다산뿐만 아니다. 실학자로 이름난 사람들, 박지원이라든가 박제가, 서유구 등은 모두 연보가 없다.

중국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어지간한 사람이면 연보가 작성되어 있다. 내 연구실에 있는 것만 해도 <완원연보> <염약거연보> <이지연보> 등 여럿이다. <이지연보>는 이지, 곧 이탁오를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중국은 ‘연보’가 아예 학문의 한 장르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일본 쪽도 사정은 같다. 몇 해 전 부산대 일문과 오경환 교수와 연보를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가 나쓰메 소세키의 연보에 대해 듣고 연구실을 방문해 확인한 적이 있다. 아라 마사토란 비평가가 만든 <소세키 연구 연표>인데, 1867년 소세키가 태어난 해부터 1916년 사망할 때까지의 연표였다. 문제는 워낙 자세하여 하루를 오전·오후로 나누기까지 할 정도로 치밀하게 소세키의 일생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경환 교수도 아마 마사토는 소세키보다 소세키에 대해 더 많이 알았을 것이라고 하며 웃었다.

이야기가 약간 겉으로 새지만, 범인들도 연보가 필요하지 않을까? 자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예컨대 마성린이란 사람을 보자. 마성린은 서리 신분이었다. <안화당사집>이란 필사본 문집을 남기고 있다. 이 문집은 18세기 서울 서리, 곧 경아전 사회의 동태를 아는 데 매우 요긴하다. 특히 이 문집 말미에 실린 <평생우락총록>이란 연보가 비상하게 중요하다. 마성린이 무슨 양반명문가도 아니고, 또 과거에 합격해서 화려한 벼슬을 거친 것도 아니고, 또 무슨 대단한 학자가 되어 학문적 업적을 쌓은 것도 아니고, 또 무슨 대단한 시인이나 산문작가가 되어 길이 남을 작품을 쓴 것도 아닌 다음에야 무슨 연보를 꾸밀 만한 것이 있으랴. 그런데 마성린은 이런 보통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는다. 그는 자신의 평생 즐겁고 기쁜 일, 걱정거리를 연보로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드물지만 좋은 연보가 있다. 정석태 선생이 엮은 <퇴계선생 연표 월일 조록>이 가장 상세하고 방대한 것이다. 이런 연보가 앞으로 많이 나왔으면 한다. 이런 책이 문화 발전의 증거다.


강명관 |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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