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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숙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남자와 여자’ 아니면 ‘신사와 숙녀’라 해야지, 세상에 한쪽으로 기운 부실 건축물 같은 어구가 어디 있는가라며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용자와 노동자’ 대신 ‘사용자와 근로자’라는 용어는 눈과 귀에 익어 아무렇지 않은가?

5월1일 메이데이(May day), 노동절을 맞이할 때마다 필자의 가슴속에는 억누를 수 없이 궁금한 의문부호가 돋아난다. “왜 우리나라에서만 노동자의 날이 아닌 ‘근로자의 날’로 부르는 걸까? 사용자는 가치중립적 용어인데 왜 근로자 한쪽에만 가치개입적 수식어인 ‘부지런할 근(勤)’을 붙여 부르는 걸까?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령에는 근로자를 공식 법률용어로 사용하고, 일반 사회과학 서적에는 노동자라는 용어의 출현 빈도가 높다. 노동자는 대개 노동자 측에서 선호하는 반면, 사용자 측에서는 근로자를 선호하는 편이다. 둘 다 의미가 비슷하고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는데 둘을 혼용하자는 의견이 많다.

필자는 갑과 을, 사용자와 노동자, 현재와 미래를 위해 근로자를 노동자로 고쳐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들겠다.

우선 왕과 신하, 채권자와 채무자, 공무원과 민간인, 교사와 학생 등 동서고금을 통해 모든 신분관계 내지 갑을관계의 주체의 명칭은 그 실질은 차치하더라도 일단 가치중립적이고 대등한 곳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정상이다. 노동자(勞動者·laborer)는 일을 통해 상품이나 용역을 생산하는 사람으로 노동력을 제공받는 쪽을 사용자라고 하는 점에서 대등한 개념으로 지칭된다. ‘근로자(勤勞者·worker)’는 육체노동이나 정신노동의 대가로 받는 소득으로 생활하는, 사용자에게 종속된 개념의 근면한 노동자를 이른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모름지기 사회적 약자층을 배려해야 한다. 정의로운 사회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 즉 사회적 약자를 우대하기 위한 사회경제적 차등이 허용되는 사회이며 이러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생겨난 대표적 법 영역이 바로 노동법이다. 노동법의 존재 이유가 갑(사용자)과 을(노동자) 간의 실질적인 대등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것 일진대, 오히려 을에게만 부지런히 일하는 노동자라는 의미의 족쇄를 채우는 법률 스스로 배임상태에 빠져 있다.

지난해 5월 1일 민주노총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근로자의 날’을 맞아 서울역 앞에서 세계 노동절대회를 열고있다. _ 홍도은 기자 hongdo@kyunghyang.com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인 사용자의 갑질을 정당화해주는 ‘근로자’를 공식 용어화함으로써 자신한테 필요한 ‘모범 근로자’ 양성에만 주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종속적인 의미를 지닌 근로자라는 용어는 사용자에게 갑질을 유발하는 격이다. 진정 사용자는 기계와 같이 부지런히 일하는 근로자만 진정한 노동자로 취급하는가. 그래도 사용자와 근로자를 고수하고 싶으면 갑측도 마음씨 좋은 사용자라는 뜻의 호업주(好業主)로 바꿔, ‘호업주와 근로자’로 불러야 균형이 맞지 않을까. ‘근로’라는 용어 자체는 일제강점기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을 강제노역에 동원하면서 조직한 ‘근로정신대’에서 유래했다. ‘근로자’라는 한자어는 중국과 대만은 물론, 일본 노동법에서도 삭제된 지 오래된 일제강점기의 유물이다(단, 일본 헌법 제28조에만 잔류하고 있을 뿐이다. 강희원 <노동헌법> 참조).

이처럼 동북아 한자문화권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입법례와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기구에서도 찾기 힘든 ‘근로자’를 우리만 외톨이같이 법률용어로 고수할 가치가 있는가. 갑을관계 주체의 대칭성과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부합한 ‘노동자’로 바로잡아, 행여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노동자 탄압국’이라는 실상과 전혀 다른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위험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필요가 있다.


강효백 |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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