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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부터 교육정책 모니터링단을 하고 있다. 교육부에서 학교마다 학부모 한 명씩 뽑으라 해서 하게 된 것. 사람을 뽑는 과정도 의아한 것이었지만, 첫 번째 설문을 받았을 때부터 내가 이 모니터링을 하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는 초등학생인데, 학교생활기록부에 관한 설문의 대부분은 중·고등학교 생활을 알아야만 적을 수 있었다. 설문에 참여할 것인지를 한참 재어 보다가, 믿고 물어볼 만한 친구가 있어 전화를 걸었다. “그게, 설문 돌리고 다수결 하듯이 해서 결정할 게 아니야.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분명한 교육 철학이 있으면, 결정하고, 사람들을 설득해서 실행해야지.”

대입제도 개선안이라는 것이 발표되었다. 이렇게 바뀌는 제도는 지금 중학교 3학년부터 해당된다고 한다. 초등 4학년 학부모인 나는 이번 개편안이 우리 아이와는 상관이 없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또 바뀌겠지. 그래도 다시 친구에게 이야기를 듣고, 한참 인터넷을 들락거렸다. 이번 안을 마련하는 데에도 시민참여단이라는 이름으로 조사해서 정책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삼았다지. 대입제도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 교육을 가장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것인데, 이것도 설문 돌리듯 하는 과정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입제도 개편 권고안과 관련해 열린 교육부 긴급 간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학 입학 전까지, 얼마나 더 상위권 대학에 갈 수 있을까만 따지는 게 학교 현장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입제도를 두고 다수결 싸움이나 다름없는 설문조사를 하겠다고 들이대면, 사람들은 자기 처지에서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방법을 선택하게 마련이다. 게다가 아이의 삶을 마치 자신의 삶인 양 여기는 학부모 입장에서는 대입에 닥쳐서 좀 더 간명하고 단순한 시스템, 그러니까 아이들을 줄 세우는 것이 잘 보이는 것이 편리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마치 학교생활종합기록부가 몇몇 돈 많은 사람들이 농간을 부리기 좋은 제도인 것처럼 소문이 나기도 했지만, 반대쪽에는 수능 점수야말로 부모의 재산과 비례한다는 통계가 있다. 수능 첫해에 대학 입시를 치렀던 나는 수능 시험에 대해 좋게 기억한다. 학력고사보다 점수가 잘 나왔으니까. 하지만 통계가 말하는 것은 부모가 충분히 돈이 많아서 수능시험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면 할수록 아이의 성적은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재수·삼수를 하고, 재수·삼수생이 점수가 더 높고. 유명 학원가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수능 점수는 낮아진다.

소위 일류대학을 간다고 해서, 삶이 풍요롭고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건 분명하다. 열일곱 살, 스무 살 아이들이 불행하도록 강요하는 교육은 바뀌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교육 정책 결정자들은 그저 전단 나누어 주듯, 골고루 설문을 돌리는 일로써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지금껏 그렇게 일을 하고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뒤로, 나와 아내는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래서 무엇을 하겠다는 교육인 거지? 하는 질문에 맞닥뜨렸다. 학부모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최대한 골고루 반영하겠다는 학교의 자세는 맨 꼭대기 교육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의 자세를 닮았다. 어디에서도 교육이 이것을 하겠다 하는 ‘뜻’을 찾기 어렵다.

며칠 전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연수에 다녀왔다. 초·중등 선생님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1983년 시작된 이 모임은 이오덕, 권정생, 윤구병 선생과 같은 분들의 뜻을 새기며, 35년이 지난 지금까지 교육에 대한 뜻을 나누고, 학교에서 또 자기가 선 자리에서 어떻게 이 뜻을 펼칠 수 있을지 직접 실천한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 저마다 학교에서 하는 방법은 조금씩 다르되, 그것이 ‘삶을 가꾸는 교육’이라고 하는 뜻을 지켜나가는 데에 어떠한가를 두고 늘 치열하다. 교육 정책이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것을 두고, 바로잡을 힘이 없는 것은 교육에 대해 품은 뜻이 없어서일 것이다. 어떻게 줄 세우는 것이 모두에게 공평한가 하는 식의 질문으로는 어떤 답을 꺼내도 누군가에 대한 유불리만 가릴 수 있을 뿐이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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